AI는 인간을 위한 것인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인가




 — 철학자 에리크 사뎅, 기술 숭배 시대에 던지는 뼈아픈 질문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기술 발전이 빨라질수록 더 자주, 더 깊이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에리크 사뎅(Éric Sadin)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문제라면, 그건 이미 늦은 질문이다. 문제는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우고 있는가다.”

최근 발표된 「Technocritique and Its Limits: Éric Sadin on Human Dignity in the Face of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논문은 사뎅의 기술 비평 철학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단순한 기술 불신이나 반(反)과학적 정서가 아닌,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기반한 비판이다.


실리콘밸리, ‘기술’을 권력으로 만들다

사뎅이 비판하는 기술의 핵심은 ‘디지털 권력화’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만든 기술 생태계를 단순한 산업혁신으로 보지 않는다. 사뎅의 시각에서 이들은 더 이상 도구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조종하는 권력을 갖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본다.

예컨대 추천 알고리즘, 행동 예측 모델, AI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은 표면적으로는 ‘편리한 서비스’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는 인간의 선택 가능성을 압축하고, 자유 의지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사뎅은 이 같은 흐름을 “디지털 결정주의(digital determinism)”라 부르며, 인간의 삶에 침투한 권력 기술로 해석한다.

그는 특히 기술이 정치·윤리적 질문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기술은 정치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술을 가치 중립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기술이 존엄을 침해할 때

이 논문은 사뎅의 비판 중에서도 ‘인간 존엄성(dignité humaine)’에 대한 강조에 주목한다. 그는 AI가 단지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갖게 되는 순간을 가장 우려한다.

예를 들어, AI가 지원자의 이력서를 평가해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면, 이건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던 자리에, ‘비인격적 판단 기계’가 들어온 셈이다. 여기서 존엄의 침해가 발생한다. “존엄은 타인에 의해 이해받고, 응시되며, 존중받을 때 유지된다. 알고리즘은 그럴 수 없다.”

이런 주장은 단순히 철학적 감상이나 불안의 표출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정체성의 기반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여전히 판단의 주체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AI가 내린 판단을 수용하는 존재’로 점차 전락할 것인가?


‘디지털 애외주의’라는 맹신

사뎅은 이 같은 현상의 뿌리를 ‘디지털 예외주의’에서 찾는다. 이는 “기술은 본질적으로 좋다”거나 “기술은 진보 그 자체”라는 식의 일종의 종교적 믿음이다. 그는 이 믿음이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시민적 토론을 차단하며, 기술 권력을 무조건 수용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나 정부는 AI나 빅데이터 기술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해 토론하거나 성찰하기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다퉈 도입한다. 기술이 먼저이고, 윤리와 인간은 나중이다. 이것이 사뎅이 말하는 ‘도구가 목적을 압도하는 시대’의 진실이다.


기술 비판은 반(反)기술이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뎅이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기술 비판자이지 반기술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그는 기술을 거부하는 대신,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철학적 함의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인간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거나 저항해야 하는지를 탐색한다. 다시 말해, “AI가 나쁜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AI는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들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를 되묻는 시기

이 논문은 사뎅의 철학을 단순 요약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사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기술은 빠르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묵직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기술을 통제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이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가?

사뎅의 철학은 단순히 AI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언어로만 말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언어를 회복하자는 외침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출처:
Sutherland, D. (2025). Technocritique and Its Limits: Éric Sadin on Human Dignity in the Face of Artificial Intelligence. AI & Society. https://doi.org/10.1007/s00146-025-016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