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에 꼭 맞는 당뇨약은 따로 있다?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맞춤형 당뇨 치료의 신세계
당뇨병 환자 천만 명 시대. 주변에서 제2형 당뇨병으로 약을 복용하는 이들을 보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보통 처음 당뇨 진단을 받으면 처방받는 표준 약물(메트포르민)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혈당 조절이 충분하지 않을 때 의사는 대개 ‘2차 치료제’를 추가로 처방한다. 이때 가장 흔하게 쓰이는 후보가 바로 SGLT2 억제제와 DPP-4 억제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진료실에서 똑같이 처방받은 약인데도, 어떤 사람은 "살도 빠지고 혈당도 잘 잡힌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반면, 다른 사람은 "혈당은 그대로고 몸만 붓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바로 전통적인 의학의 ‘평균적 접근(One-size-fits-all)’, 즉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방식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사람마다 유전자가 다르고, 생활 습관이 다르며, 콩팥 기능이나 비만도가 다른데 약 효과가 모두에게 같을 리 만무하다.
최근 의료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환자 개인의 특성에 맞춘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다. 그리고 이 정밀 의료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최근 핀란드와 인도의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한 논문은 인공지능을 통해 당뇨병 환자 개개인에게 SGLT2 억제제와 DPP-4 억제제 중 어떤 약이 최적의 효과를 낼지 완벽하게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단순히 혈당을 떨어뜨리는 것을 넘어, 체중과 콜레스테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이 스마트한 AI 처방전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1. 혈당만 잡으면 끝? 당뇨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기존에도 환자 맞춤형 당뇨 치료를 위한 인공지능 모델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은 ‘당화혈색소(HbA1c)’라는 단 하나의 혈당 지표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만을 예측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당뇨병은 그렇게 단순한 질환이 아니다. 제2형 당뇨병은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등 다양한 대사 증후군과 샴쌍둥이처럼 얽혀 있다. 혈당은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데 체중을 증가시키거나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약이 있다면, 과연 그 환자에게 최고의 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당뇨 환자들은 심혈관 질환이나 신장 합병증으로 사망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약물을 선택할 때 혈당 외의 대사 지표들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적인 차별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연구진은 당화혈색소(HbA1c)뿐만 아니라, 나쁜 콜레스테롤(LDL), 좋은 콜레스테롤(HDL), 그리고 체질량지수(BMI)까지 총 4가지 핵심 건강 지표를 '동시에' 예측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설계했다. 약을 먹었을 때 내 혈당뿐만 아니라 몸무게와 혈관 건강이 어떻게 변할지 통틀어 예측해 주는 종합 시뮬레이터를 만든 셈이다.
2. 북유럽 환자 5,000명의 10년치 의료 데이터가 기반이 되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AI 모델이라도 훈련 데이터가 부실하면 ‘가짜 예언가’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모델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유럽 핀란드 노스 카렐리아(North Karelia) 지역의 실제 전자 건강 기록(EHR) 데이터를 활용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축적된 5,480명 환자의 1차 의료 및 전문 병원 기록을 샅샅이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데이터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엄격한 필터링 과정을 거쳤다. 복용 중인 당뇨약의 이력, 신장 기능 지표(eGFR), 기저 질환 여부(고혈압, 심장 질환 등)를 포함해 환자의 나이, 성별, 흡연 여부 등 총 128개의 변수를 초기 데이터셋으로 설정했다.
이후 데이터 정제 과정을 통해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변수를 걷어내고, 약물 복용 후 12개월 시점의 건강 상태가 명확히 기록된 데이터만을 추려내어 최종적으로 인공지능을 훈련시켰다. 누군가의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 당뇨 환자들이 약을 먹고 몸으로 겪은 10년간의 리얼 스토리가 AI의 교과서가 된 것이다.
3. 한 번에 4가지 미래를 내다보는 '멀티 아웃풋 AI'의 마법
연구진이 도입한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은 '다중 출력 회귀(Multi-Output Regression)' 모델이다. 보통의 AI가 "이 약을 먹으면 혈당이 0.5% 떨어집니다"처럼 하나의 답만 낸다면, 이 모델은 "이 약을 먹으면 혈당은 0.8% 떨어지고, 체중은 1.5kg 감량되며, LDL 콜레스테롤은 다소 개선됩니다"와 같이 여러 개의 연관된 결과를 한 번에 계산해 낸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LightGBM, XGBoost, 랜덤 포레스트 등 다양한 최신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테스트했고, 그중 예측 성능과 환자별 다양성을 가장 잘 잡아내는 'LightGBM' 알고리즘을 최종 낙점했다.
여기에 의학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하나 더 더해진다. 만약 AI가 예측하기를, A라는 약을 먹으면 혈당은 아주 잘 떨어지는데 몸무게가 늘어나고, B라는 약을 먹으면 혈당은 조금 덜 떨어지지만 살이 빠진다고 하면 어떤 약을 골라야 할까? 환자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우선순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영리한 알고리즘적 합의 도구, 즉 '다수결 투표(Majority Voting)' 방식과 '중요도 가중치 합산(Importance-Weighted Aggregation)' 방식을 정립했다. 여러 지표의 예측치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단 하나의 최적 약물'을 추천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4. 수치로 입증된 효과: AI의 추천대로 약을 먹었더니 일어난 변화
실제 AI가 내린 처방전은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연구진은 AI의 추천과 실제 의사의 처방이 일치했던 환자 그룹(일치 그룹)과 일치하지 않았던 환자 그룹(불일치 그룹)을 나누어 12개월 뒤의 건강 지표 개선 수치를 비교 검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가장 대표적인 당뇨 약물인 SGLT2 억제제를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 당화혈색소(HbA1c) 감소 폭: AI가 SGLT2 억제제를 추천했고 실제로 그 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12개월 후 혈당 지표가 평균 13.45 mmol/mol 감소했다. 반면, AI는 다른 약을 추천했는데 실제로는 SGLT2 억제제를 처방받았던 환자들은 겨우 2.53 mmol/mol 감소하는 데 그쳤다. 무려 5배가 넘는 극적인 효과 차이다.
- 체질량지수(BMI) 감소 폭: 비만도를 나타내는 BMI 역시 AI의 추천을 따른 그룹은 평균 1.55 kg/m²가 감소하며 뚜렷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인 반면, 추천과 어긋난 그룹은 오히려 0.23 kg/m²가 증가하는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 콜레스테롤(LDL) 감소 폭: 혈관을 막는 주범인 LDL 콜레스테롤 역시 AI 추천 일치 그룹에서는 0.60 mmol/L 감소했으나, 불일치 그룹에서는 0.14 mmol/L 감소에 머물렀다.
전체적인 약물 성향을 보면 SGLT2 억제제는 전반적으로 혈당, 체중, LDL 콜레스테롤을 고르게 낮추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DPP-4 억제제 역시 혈당과 콜레스테롤 개선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으나, 평균적으로 체중(BMI)을 다소 증가시키는 특성이 확인되었다. AI는 환자의 기저 상태를 파악해 이러한 약물별 특성이 환자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기가 막히게 골라낸 것이다.
5. '설명 가능한 AI(XAI)'가 진료실의 신뢰를 높인다
"인공지능이 이 약을 먹으라는데, 왜 그런지는 저도 모릅니다." 만약 의사가 진료실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 누구도 그 처방을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의료 현장에 쉽게 도입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부 계산 과정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 문제 때문이었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HAP(Shapley Additive exPlanations)'라는 기술을 모델에 결합했다. SHAP는 AI가 그런 예측 결과를 도출하는 데 있어 어떤 환자 정보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시각적인 수치로 환하게 보여주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특정 환자에게 SGLT2 억제제가 강력 추천되었다면, SHAP 분석을 통해 "이 환자는 기저 당화혈색소 수치가 매우 높고, 비만도가 높으며, 신장 기능 지표(eGFR)가 특정 범위에 있기 때문에 이 약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다. 이처럼 '설명 가능한 AI(XAI)' 기술은 의사가 AI의 제안을 참고해 더욱 확신을 갖고 임상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조력자가 된다.
6. 아직은 남아있는 숙제와 정밀 의료의 미래
물론 이 대단한 인공지능 처방전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연구에 사용된 종합적인 처방 추천 알고리즘(Single-treatment selection)의 전체적인 예측 정확도(Accuracy)는 0.47 수준으로 측정되었다. 이는 임상 현장에 완전히 단독으로 적용하기에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음을 시사한다.
둘째, 데이터 가공 과정에서 LDL 콜레스테롤 지표처럼 결측치(누락된 데이터)가 너무 많은 일부 항목의 경우 예측 모델의 안정성이 다소 떨어져 데이터 일부를 완전히 삭제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셋째, 이번 연구는 핀란드 특정 지역의 단일 코호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식습관과 유전적 특성이 완전히 다른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 환자들에게 이 모델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도 동일하게 뛰어난 효과를 낼지는 추가적인 다국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가지는 가치는 눈부시다. 단순히 눈앞의 혈당 수치 하나만을 좇던 1차원적 당뇨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의 체중과 지질 대사까지 종합적으로 케어하는 다차원적 정밀 의료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병원에 방문하자마자 AI가 내 10년치 건강 기록을 스캔해 "당신에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2차 당뇨약은 이것입니다"라고 짚어주는 맞춤형 의료 시대가 일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출처
Anusha Ihalapathirana, Piia Lavikainen, Pekka Siirtola, Satu Tamminen, Gunjan Chandra, Tiina Laatikainen, Janne Martikainen, and Juha Röning. (2026). Beyond Glycemic Control: Precision Medicine in Type 2 Diabetes Using Multi-Output Explainable Artificial Intelligence for Personalized SGLT2 and DPP-4 Therapy Selection. AI, 7(6), 183. https://doi.org/10.3390/ai7060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