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병원 내 슈퍼박테리아 감염을 예측하다

 



‘보이지 않는 전파자’를 찾아라: 

“감염은 조용히 퍼진다. 그 침묵을 먼저 깨는 기술이 나타났다.”

바이러스보다 끈질기고, 세균보다 교묘한 존재. 병원 내 감염을 일으키는 슈퍼박테리아, 그 중에서도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VRE)’은 현대 병원의 악몽 같은 존재다. 이 균은 환자 몸속에 숨어 감염을 일으키기 전까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감염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조용한 전파자’들, 즉 감염됐지만 아직 증상이 없는 환자들이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병원의 연구진이 이 전파자들을 조기에 찾아내는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했다.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병원 전체를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만들어 감염 가능성을 예측한다. 이 연구는 전 세계 병원 감염 예방 전략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병원은 살아 있다: ‘그래프 신경망’으로 본 병원의 모습

연구진은 약 8,400명의 환자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들은 병실에서 병실로, 검사실에서 수술실로 총 12만 5천 건 넘는 움직임을 남겼다. 단순히 병실 목록이 아니라, ‘어디에 누구와 있었는가’,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가’까지 모두 데이터화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그래프 신경망(GNN)’이라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됐다. GNN은 각 환자, 병실, 침대, 진료과 등 병원의 모든 요소를 ‘노드(node)’로, 이들 간의 관계를 ‘엣지(edge)’로 구성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만든다. 즉 병원을 하나의 ‘살아 있는 그래프’로 본 셈이다.

여기에 환자의 진단 코드(ICD), 수술·처치 코드(OPS), 나이, 성별, 혈액 수치 같은 정보도 결합했다. 그 결과, AI는 단순한 감염 유무가 아니라 "이 환자는 앞으로 감염될 확률이 높다"는 예측까지 가능해졌다.


정적인 모델 vs. 동적인 모델… 승자는?


연구진은 두 가지 모델을 실험했다. 하나는 모든 데이터를 한 번에 넣은 ‘정적(static) 모델’, 다른 하나는 매일매일의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반영한 ‘동적(dynamic) 모델’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동적 모델은 정적 모델보다 감염 예측 정확도가 약 20% 이상 높았다. 특히 \\민감도(실제 감염자를 감지하는 비율)는 80.8%, 특이도(비감염자를 정확히 가려내는 비율)는 94.2%\\에 달했다. 이는 기존의 감염 스크리닝 방법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또한 감염 예측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수술·처치 코드(OPS)’와 ‘진단 코드(ICD)’였다. 특정 수술을 받았거나 특정 질환을 앓은 환자는 VRE에 감염될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이다.


3일 먼저 알 수 있다면, 감염은 막을 수 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예측 시점’이다. 연구팀은 AI가 실제 감염 진단이 내려지기 최대 3일 전에 이미 그 환자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병원 감염 통제팀(IPC)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지금까지는 환자가 감염된 후에야 비로소 대응이 가능했다면, 이젠 AI가 미리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곧 감염이 나타날 환자들이 이쪽에 있다!"고.

실제로 이 연구팀은 감염이 퍼지는 병원 내 공간적 특성까지 반영했다. 특정 병실이나 침대가 VRE 전파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AI는 환자들의 ‘접촉 이력’까지 분석해 감염 가능성을 높게 본다. 말하자면, 감염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에서 먼저 퍼진다는 사실을 모델이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당장 쓸 수 있을까? 과제는 ‘실시간 연결’

그렇다면 이 모델은 실제 병원에서 지금 바로 사용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병원 시스템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병원마다 사용하는 정보시스템이 달라, AI 모델과 병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려면 약간의 수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감염예방팀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도 필요하다. "누구를 우선 검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AI가 직관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의료진이 직접 쓰기 쉬워야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


감염병 예방의 미래, AI와 손잡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AI를 활용한 실험이 아니다. 병원 내 감염, 특히 ‘무증상 전파자’를 예측하는 데 실질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실험이다.

연구팀은 "우리는 디지털 기록을 그저 저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 안전을 위한 예측 도구로 바꾸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 말대로라면 이 모델은 병원 정보시스템과 AI가 손을 잡은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이 모델이 특정 병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병원에서도 이 모델을 적용하면 VRE는 물론, 다른 다제내성균(MDRO) 감염도 예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제 병원 감염의 시대는 ‘반응’이 아니라 ‘예측’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조용히 퍼지는 감염에 맞서, 조용히 작동하는 AI가 병원의 새로운 수문장이 되어가고 있다.


출처 논문

Donabauer G, Rath A, Caplunik-Pratsch A, Eichner A, Fritsch J, Kieninger M, et al. (2025) AI modeling for outbreak prediction: A graph-neural-network approach for identifying 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us carriers. PLOS Digit Health, 4(4): e00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