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세동 치료, 인공지능이 수술 전략을 바꾼다
AI가 심장의 이상을 찾아낸다 |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질환, 심방세동(AF)은 세계적으로 3,300만 명 이상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치료에는 약물치료 외에도 '도자절제술(ablation)'이라는 수술적 방법이 쓰인다. 이 중에서도 '폐정맥격리술(PVI)'은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잡았지만, 지속성 또는 장기 지속성 심방세동 환자에게는 성공률이 낮아 개선이 필요했다.
그 해답을 인공지능(AI)에서 찾은 연구가 등장했다. 독일 뮌헨 공대와 미국, 유럽 26개 병원 공동 연구팀은 심방세동의 맞춤형 치료 전략으로 AI를 활용한 절제술을 시도했고, 그 결과 기존 방식보다 뚜렷한 효과를 입증했다.
AI가 찾아낸 '심방의 이상 신호'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AI는 '시공간 전위 이상(spatio-temporal electrogram dispersion)'이라는 심장 전기 신호의 이상 패턴을 탐지한다. 이 패턴은 심방세동을 유발하거나 유지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일반적인 의사의 눈으로는 식별이 어렵다. AI는 수십만 건의 심장 전기 신호 데이터를 학습한 후, 100밀리초 이내에 실시간 분석이 가능한 상태로 설계됐다.
이 AI를 활용해 환자 각각의 심장 지도 위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는 지점을 표시한 뒤, 그 부위를 중심으로 절제술을 시행한 것이 바로 '맞춤형 절제술(tailored ablation)'이다. 반면 비교 그룹은 기존의 폐정맥 부위만 절제하는 PVI-only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무작위 임상시험으로 효과 검증
연구팀은 미국과 유럽 5개국의 병원 26곳에서 심방세동으로 약물치료에 실패한 374명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눴다. AI 기반 맞춤형 절제술 그룹 187명, 기존 PVI-only 그룹 183명이다. 두 그룹 모두 1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1년 후 심방세동이 재발하지 않은 환자의 비율은 맞춤형 절제술 그룹에서 88%, 기존 그룹에서는 70%였다. 특히 발병 기간이 6개월 이상인 만성 심방세동 환자에서는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88% vs 65%). 수술 효과에서 AI 전략이 확실한 우위를 보인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부정맥 재발률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76% vs 71%). 하지만 재발 양상은 달랐다. 기존 그룹에선 대부분이 심방세동으로 재발한 반면, 맞춤형 그룹은 조직적이고 치료가 쉬운 심방조동(AT) 형태로 재발해 재수술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결과는 더 낫다'
맞춤형 절제술은 수술 시간도 두 배 가까이 길었다. 평균 시술 시간은 178분으로, 기존 방식(92분)보다 훨씬 길었다. 방사선 노출 시간, 고주파 치료 시간 등도 더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합병증 발생률은 두 그룹 모두 4% 미만으로 유사했고, 안전성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재수술 횟수나 재수술 시 절제 부위, 부정맥 종류 등에서도 AI 기반 맞춤형 치료가 더욱 정밀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다.
AI, 복잡한 치료도 '표준화'하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AI가 복잡한 전기 생리학 신호를 정량화하고 표준화해 수술의 일관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의사의 경험과 주관적 판단에 따라 절제 부위가 결정됐지만, AI는 이를 수치화해 누구나 같은 기준으로 절제를 수행하게 도왔다. 전 세계 26개 병원, 51명의 시술자가 참여했음에도 일관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다.
또한 이 AI 기술은 기존 심장 수술 기기와 호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병원 현장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수술 실시간 중계, 지도 제작, AI 경고 표시 등도 가능하다.
향후 과제로는, 더 긴 추적 기간 동안의 효과 검증과 새로운 절제 도구의 개발, 절차 자동화 등이 제시됐다. 예컨대, 펄스 전기 절제술이나 대면적 카테터 개발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맞춤형 의료의 새로운 모델
이번 연구는 AI가 단순 진단을 넘어 치료 전략 설계에 직접 개입한 첫 대규모 임상시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기존 치료법이 효과가 낮았던 만성 심방세동 환자에게 맞춤형 접근이 더 큰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향후 다양한 질환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응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AI는 이제 단순한 조언자를 넘어, 실제 치료 계획의 핵심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정확하고 일관된 판단'이 중요한 영역일수록, AI는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출처 논문Deisenhofer, I. et al. Artificial intelligence for individualized treatment of persistent atrial fibrillatio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Nat. Med. 31, 1286–1293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