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의 찰나를 포착하다
화학 반응의 전이 상태를 단 0.4초 만에 예측하는 AI 모델, React-OT의 개념을 시각화한 이미지. 중심에는 반응물과 생성물을 잇는 전이 상태 구조가 빛나고 있으며, 좌측의 노트북 화면에는 React-OT가 표시돼 AI의 빠른 예측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
0.4초 만에 화학 반응의 전이 상태를 그리는 AI, React-OT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된다. 분자가 깨지고 새로 연결되며 에너지가 이동하는 찰나의 구조, 바로 전이 상태(Transition State)다. 이 짧은 순간은 반응의 속도와 결과를 좌우하는 열쇠지만, 너무도 짧고 불안정해서 실험으로 직접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전이 상태를 계산으로 예측해왔다. 문제는, 그 계산이 너무 느리다는 것.
하지만 이제, 그 속도와 정확도의 벽을 깨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미국 MIT와 조지아 공대, 코넬대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React-OT라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해, 단 0.4초 만에 전이 상태 구조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그 정확도는 기존 최고 성능 모델보다도 뛰어나다.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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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상태, 왜 그렇게 중요한가?
화학 반응은 단순히 A가 B로 바뀌는 사건이 아니다. 반응의 중심에는 ‘전이 상태’라는 고에너지 구조가 존재한다. 이는 반응물과 생성물 사이의 일종의 언덕 같은 존재로, 이 언덕을 얼마나 잘 넘느냐에 따라 반응의 속도와 가능성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 전이 상태는 수 펨토초(1펨토초 = 10^-15초) 수준으로 너무 짧게 존재하고, 실험적으로 포착하기엔 까다롭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전이 상태를 ‘계산’으로 찾아야 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양자역학 기반의 밀도범함수 이론(DFT)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계산이 너무나 느리다는 것. 하나의 반응을 계산하는 데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이 걸리며, 수천 개의 반응 경로를 분석해야 하는 고속 탐색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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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방법의 한계, 그리고 React-OT의 등장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기계학습(ML)을 활용한 전이 상태 예측이 활발히 시도됐다. 특히 확산 모델(diffusion model) 기반의 방식이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예측이 ‘확률적’이어서 여러 번 반복 실행해야 하고, 각 예측 결과 중 가장 적합한 구조를 고르기 위해 추가적인 순위 모델이 필요했다.
React-OT는 이 모든 번거로움을 없앤 ‘결정론적(deterministic)’ 모델이다. 즉, 반응물과 생성물을 주면 단 하나의 전이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한다. 반복도 없고, 주사위 굴리듯 운에 맡길 필요도 없다. 단 한 번에 정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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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ct-OT의 핵심 기술: '최적 수송'을 도입하다
React-OT는 기존 확산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적 수송(Optimal Transport)' 개념을 도입했다. 이 개념은 원래 물류나 경제학 등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물체나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원리를 전이 상태 예측에 응용한 것이 React-OT다. React-OT는 반응물과 생성물 사이를 잇는 가장 ‘효율적인 이동 경로’를 계산해 전이 상태를 예측한다. 이 과정은 일반적인 확률 모델이 아니라, 미분방정식을 활용한 물리적 경로 계산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예측은 항상 동일하고, 정확도는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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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정확할까? 얼마나 빠를까?
연구진은 React-OT를 검증하기 위해 1만여 개의 유기 반응 데이터를 학습시켰고, 그중 1,073개의 새로운 반응을 테스트에 사용했다. 그 결과:
구조 오차(r.m.s.d): 평균 0.10 Å, 중앙값 0.05 Å (기존 모델보다 약 30% 향상)
장벽 높이 예측 오차: 평균 3.34 kcal/mol, 중앙값 1.06 kcal/mol (화학적으로 의미 있는 정확도 도달)
예측 시간: 단 0.4초!
심지어, 더 저렴한 반정밀도 계산 방식인 GFN2-xTB 데이터를 사용해 선학습(pretraining)을 하면, 성능은 추가로 25%까지 향상된다. 이 경우, React-OT는 0.044 Å 수준의 초정밀 예측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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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은 줄이고, 신뢰성은 높이고
React-OT는 단순히 빠르기만 한 모델이 아니다. 놀라운 점은, 전이 상태 예측의 신뢰도를 자동으로 평가하는 ‘확신 모델(confidence model)’까지 함께 구축됐다는 것. 이 모델은 React-OT가 자신 있게 내놓은 예측은 그대로 사용하고, 확신이 낮은 경우에만 기존 DFT 계산을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이 방식으로 전체 계산 비용을 1/7 수준으로 줄이면서도, 결과의 정확도는 기존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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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는 없을까?
React-OT는 현재 탄소, 수소, 질소, 산소 등 일반적인 유기 화합물 반응에 대해서만 학습되어 있다. 전이금속을 포함한 촉매 반응이나, 라디칼 반응 등에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또한, 반응물과 생성물의 구조를 입력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이 구조 자체를 DFT로 얻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학습 기반의 분자 구조 예측 기술과의 연계를 제안하고 있으며, 전이금속 반응에 대한 데이터셋 확대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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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화학, 달라질 수 있다
React-OT는 단순히 하나의 예측 모델이 아니다. 이것은 화학 반응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도구다. 빠르고 정확한 전이 상태 예측은 신약 개발, 신소재 설계, 친환경 촉매 탐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화학자들은 수많은 반응을 하나하나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React-OT가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찰나의 반응을 그려줄 것이다. 과학이 꿈꾸던 "순간 포착"의 시대가, 이제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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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Duan, C.; Liu, G.-H.; Du, Y.; et al. Optimal transport for generating transition states in chemical reactions. Nature Machine Intelligence 2025, 7, 615–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