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끼어드는 인공지능 조언자 ‘Clair’의 실험
“얘들아, 이건 어때?” 학생들의 온라인 토론에 자연스럽게 개입하는 AI 조언자 'Clair'. 가벼운 말풍선 하나로도 대화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
요즘 교실은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협력 학습(collaborative learning) 덕분이다. 학생들이 짝을 지어 과제를 해결하면서, 서로 설명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이 교육 현장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다들 제각각 이야기 중인데, 선생님은 한 분뿐이다.”
협력학습이 활발해질수록, 모든 학생 그룹에 선생님이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걸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인물이 있다. 이름은 Clair, 사람처럼 말 걸고 조언하는 인공지능 대화 에이전트다.
Clair, 수업에 끼어들다
Clair는 단순한 챗봇이 아니다. 학생들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적절한 시점에 “혹시 이런 건 어때?” “지금 주제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라며 개입한다. 수업 내용은 ‘소화 시스템과 효소’였다. 학생들은 짝을 지어 실험과 토론을 통해 개념을 탐구했고, 일부 그룹은 Clair와 함께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세 가지였다:
1. Clair가 대화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까?
2. 그래서 학생들의 지식은 더 늘어날까?
3. 생산적인 대화가 지식 향상으로 이어지는 데 Clair는 방해가 될 수도 있을까?
“더 얘기해봐” Clair의 대화 개입 방식
Clair는 단순히 아무 때나 끼어들지 않는다. 학생들의 대화를 분석해 다음과 같은 ‘Talk Moves’를 쓴다:
* “지금 조용한데, 어떻게 되고 있어?”(침묵이 길어질 때)
* “혹시 궁금한 거 있어?” (질문이 오가지 않을 때)
* “소화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 (주제에서 벗어날 때)
* “온도 높이면 효소는 어떻게 될까?”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할 때)
이런 개입은 ‘APT 프레임워크’라는 교육 이론에 기반해 설계됐다. 이론에 따르면 생산적인 대화는 4가지 목표를 포함해야 한다:
1. 자기 생각 말하기
2. 서로 경청하고 맞춰가기
3. 논리를 깊이 있게 확장하기
4. 서로의 생각에 반응하고 이어가기
결과는? 대화는 좋아졌지만, 지식은 그대로
연구진은 네덜란드 고등학생 14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한 그룹은 Clair 없이, 다른 그룹은 Clair와 함께 활동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 Clair와 함께한 그룹은 더 많은 말, 더 긴 대화를 했다.
* 특히, 생각 나누기, 경청하기, 반응하기 영역에서 유의미한 향상이 있었다.
* 하지만 깊이 있는 논리 전개(Goal 3)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 그리고 지식 점수(포스트 테스트)에서도 차이가 없었다!
더 놀라운 점은, Clair 없이 진행한 그룹에서 서로의 생각에 반응한 대화가 높을수록 시험 점수도 높았다. Clair가 도와줬던 그룹에서는 이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Clair가 대화에 개입하는 예시 |
“도움이 되긴 했는데, 점수에는 안 나타났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 학생들이 Clair를 AI 튜터로 착각했을 가능성
* 너무 쉬운 과제라 깊은 사고를 할 기회가 부족했던 점
* AI 개입이 오히려 인지적 부담(cognitive load)을 줬을 수 있음
즉, 대화는 활발해졌지만, 그게 ‘지식 획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Clair의 개입이 생산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이 학습의 핵심인 깊이 있는 사고와 이해를 자극하진 못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 Clair는 진화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 Clair가 좀 더 내용에 깊이 있게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 학생 수준에 맞는 Talk Moves를 세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 장기적으로 사용하며 익숙해질수록 효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향후 연구에서는 Clair의 개입이 인지 부하를 유발하는지 여부, 그리고 다양한 과목과 난이도에서의 효과 차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AI가 수업을 돕는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도울 것인가’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Clair는 학생들에게 말을 시키고,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곧 ‘더 많이 배운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AI가 정말 도움이 되려면, 학생의 사고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녹아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교사의 역할을 보조하는 진짜 AI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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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de Araujo, A.; Papadopoulos, P. M.; McKenney, S.; de Jong, T.
Investigating the Impact of a Collaborative Conversational Agent on Dialogue Productivity and Knowledge Acquisi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Artificial Intelligence in Education*,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