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아닌 AI와 대화로 진단받는 시대, 곧 온다?

 

AI가 의사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이 짧은 문장이 진단의 시작점이다. 의사의 질문과 환자의 답변이 오가며, 수많은 병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런데 이 역할을 이제 인공지능(AI)이 대신할 수 있을까? 구글 딥마인드와 구글 리서치가 공동 개발한 대화형 의료 AI 시스템 'AMIE(Articulate Medical Intelligence Explorer)'는 이 질문에 놀라운 답을 내놓았다.


AI가 의사보다 더 정확하다?

연구팀은 3개국(캐나다, 영국, 인도)에서 총 159개의 가상 진료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실제 의사 20명과 AMIE에게 동일하게 수행하게 했다. 진료는 실시간 채팅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은 환자 역할을 맡은 훈련된 배우들과의 대화로 구성됐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문의 평가자와 환자 역할 배우 모두에서 AMIE가 대부분의 평가 항목에서 실제 의사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정확한 진단은 물론, 공감 능력, 대화의 구조, 치료 방안 제시 등 30여 가지 항목에서 우위였다. 특히 AMIE는 의사보다 더 정중하고, 공감하며,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요점을 잘 정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장기라고 믿어졌던 '진단 대화' 영역에서 AI가 뛰어난 성과를 보인 셈이다.


AMIE는 어떻게 학습했나

AMIE의 성능 비결은 독특한 학습 방식에 있다. 이 AI는 수많은 실제 진료 데이터를 학습했을 뿐 아니라, AI 스스로 환자와 의사 역할을 번갈아 수행하며 대화를 시뮬레이션하는 '셀프플레이(self-play)' 방식으로 훈련됐다. 이 과정에서 대화의 질을 평가하는 '비평가 AI'가 피드백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점점 더 정교한 대화를 구사하게 된 것이다.

또한 다양한 질병 시나리오와 환자 성향을 학습하도록 설계돼, 단순한 문답을 넘어 맥락을 파악하고 적절한 진단과 치료 계획까지 제시할 수 있다. AMIE는 이렇게 만들어진 1만 개 이상의 시뮬레이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고도화해왔다.


진짜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할까?

그렇다면 AMIE는 실제 병원에서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연구팀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우선, 이번 실험은 실시간 채팅 기반의 가상 진료였으며, 음성이나 영상 기반의 실제 진료 환경과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실제 환자의 감정, 언어 능력, 배경 등은 AI가 학습한 시뮬레이션과 다를 수 있다. 특히 영어를 잘하지 못하거나 비언어적 신호가 중요한 환자에게는 AMIE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AI가 제시한 진단이 틀렸을 경우의 책임 소재, 윤리적 문제, 개인정보 보호, 공정성 등의 이슈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AMIE는 단지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일 뿐, 당장 병원에 도입되기엔 아직 조심스러운 단계다.


AI와 의사의 협업 가능성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AI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AMIE는 수많은 질환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단 목록을 제시하고, 환자와 공감적인 대화를 이끌 수 있다. 반면 의사는 환자의 미묘한 감정 변화, 문화적 배경, 비언어적 단서 등을 해석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따라서 미래의 진료는 'AI+의사'라는 팀 기반 진료로 바뀔 수 있다. AI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 제공자, 의사는 인간적인 판단과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이나, 1차 진료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AI 진료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의료 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기술의 도입에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AMIE의 등장은 분명 '대화형 AI'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공감하고 판단하며 대화하는 AI가 의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의료 환경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출처 논문Tu, T. et al. Towards conversational diagnostic artificial intelligence. Nature (2025). https://doi.org/10.1038/s41586-025-088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