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하는 법을 가르치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유럽연합의 연구소가 1년간 실험한 생성형 AI 이야기


지난 1년 동안, 유럽연합의 과학 싱크탱크인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는 조용히 하나의 실험을 이어왔다. 실험의 주인공은 사람도, 새로운 기계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AI는 아직 ‘어디에 쓸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JRC는 그것을 과감하게 일터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 실험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공공기관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지침이 되어주었다. "증명은 먹어봐야 안다"는 격언처럼, 그들은 실제로 써봤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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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도 AI를 쓴다고? – 그들은 어떻게 시작했나


JRC는 유럽연합 산하의 과학 자문 기관으로, 3000명이 넘는 지식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2023년 봄, 이 조직은 ‘GPT@JRC’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것은 단순히 ChatGPT 같은 도구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기관 내부망에서 안전하고 법적으로 문제없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자체 시스템이었다.


시작은 소박했다. 몇 백 명의 연구원들이 제한된 기능을 실험적으로 써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몇 달 만에 사용자 수는 500명을 넘어섰고, 1년 후에는 1만 2천 명을 넘겼다. 전체 조직의 절반 이상이 AI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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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AI도 훈련이 필요하다 – AI-IQ라는 새로운 개념


이들이 도입한 개념 중 흥미로운 것이 바로 ‘AI-IQ’다. 인간의 IQ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AI 시스템의 복잡도와 기능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가장 낮은 AI-IQ 0은 항공사 웹사이트의 챗봇처럼 정해진 답만 하는 수준이다. 반면 AI-IQ 6은 여러 개의 AI가 팀처럼 협업하며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수준이다. JRC는 이 기준을 통해 "이 업무에 이 정도 수준의 AI면 충분하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업무마다 적절한 수준의 AI를 연결했고, 무리한 기술 적용으로 인한 오류나 실망도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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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AI가 진짜 쓸모 있었을까?


가장 기본적인 활용은 문서 교정, 요약, 번역 같은 단순 작업이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절약했다”, “영문 보고서를 쓸 때 훨씬 수월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로그래밍 지원도 유용했다. 특히 과학자들이 파이썬이나 R 같은 언어를 다룰 때, GPT는 낯선 문법이나 코드 구조를 빠르게 이해하고 제안해줬다. "이 코드에 뭐가 문제지?"라고 물으면, GPT가 오류를 찾아주는 식이다.


더 나아가 일부 팀은 대량의 설문 응답을 분석하거나 과학 논문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데 GPT를 활용했다. 심지어 보안 분야에서는 위협 분석을 AI에게 맡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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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 커뮤니티가 만든 변화


이 실험이 성공한 또 다른 비결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티’였다. 단지 도구를 제공한 게 아니라, 사용자들이 서로 배울 수 있도록 정기적인 행사, 워크숍, 사용자 이야기 공유 세션 등을 열었다. AI를 잘 다루는 동료가 “나는 이렇게 써봤어”라고 말해주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AI 사용을 어렵게 만드는 건 종종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AI가 틀린 말을 하면 어떡하지?”, “내 일을 대신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분위기가 AI 확산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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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드러난 진짜 교훈은 간단하다. AI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그 기술을 얼마나 잘 쓰느냐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JRC는 ‘AI 나침반(GenAI Compass)’이라는 개념도 함께 제안했다. 어떤 업무에 AI를 쓸 때, 기술 수준(AI-IQ)과 사용자 역량(AI Literacy)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마치 나침반처럼, 방향을 잃지 않고 AI 도입을 진행하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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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과제 – 공공기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AI를 업무에 도입한 조직은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실험과 분석 없이 ‘유행처럼’ 따라가다 보면, 실망만 안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


JRC의 사례는 그 반대다. 그들은 실제 사용 사례를 쌓고, 피드백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냈다. 단지 기술을 도입한 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새로 디자인한 것이다.


공공 부문에서도 AI가 실질적 가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JRC의 실험.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업무 방식이 더 많은 조직에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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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De Longueville, B.; Sanchez, I.; Kazakova, S.; Luoni, S.; Zaro, F.; Daskalaki, K.; Inchingolo, M. The Proof Is in the Eating: Lessons Learnt from One Year of Generative AI Adoption in a Science-for-Policy Organisation. AI 2025, 6,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