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물학을 이해하는 인간의 새로운 눈이 되다



20세기 후반, 인간은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며 생물학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차세대 시퀀싱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오믹스(omics)'라는 이름의 데이터 폭풍을 맞이했다. 유전체, 전사체, 단백질체, 대사체 등 생명체의 분자 정보를 한 번에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생물학은 빅데이터의 시대에 진입했다. 문제는, 이 방대한 데이터를 사람이 직접 해석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것.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 이 논문은 AI가 어떻게 생명과학 연구, 특히 식물, 동물, 미생물 분야에서 데이터의 복잡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보여준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생물학 데이터와 AI의 만남

NGS 기술로 유전체 분석이 일상화되면서, 생명과학 실험 하나에서 수십 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오믹스 데이터가 생성된다. RNA-seq으로 전사체를 분석하고, 질량분석기로 단백질과 대사물을 측정하며, 드론과 센서를 활용한 이미징 기술로 식물의 생육 상태까지 기록한다.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를 분석하려면, 인간의 직관을 넘는 분석 도구가 필요하다. 이때 머신러닝(ML), 딥러닝(DL) 등 AI 기술이 생물학의 분석 도우미로 활약하게 된다.


AI의 핵심: 패턴을 학습하고 예측하다

AI는 일종의 통계적 학습기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자 발현 패턴이 있을 때 어떤 질병이 발생하는지를 학습한 뒤, 새 데이터를 보면 이를 예측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도학습'과 '비지도학습'이 활용된다. 전자는 정답이 있는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고, 후자는 데이터 속 숨은 구조를 스스로 찾아낸다. 유전체 분석처럼 변수(예: 유전자 수)가 수만\~수백만 개인 데이터에서는 이런 기계적 학습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를 낸다.


생명과학에 적합한 알고리즘은?

생명정보 분야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 알고리즘은 선형회귀, 서포트 벡터 머신(SVM), 의사결정나무, 나이브 베이즈, 그리고 딥러닝 기반의 인공신경망(CNN 등)이다. 이들 알고리즘은 데이터 특성에 따라 선택되며, 일부는 해석력이 높아 생물학적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데 유리하다. 예컨대, 결정트리는 어떤 유전자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줄 수 있다.

분야별 적용 사례: 식물, 동물, 미생물

식물 과학에서는 AI가 이미징 기반의 생육 분석, 병해 진단, 뿌리 구조 분석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작물의 수확량 예측에 있어 대사체 기반 머신러닝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토마토나 블루베리의 향미 조절에 기여할 대사물질을 AI가 찾아낸 사례도 있다. 동물 과학에선 가축의 건강 상태나 성장 예측에 AI가 쓰인다. 예컨대, 닭의 혈액 대사체로 건강 여부를 구분하거나, 돼지의 근육 전사체를 통해 사료 효율성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미생물 분야에선 환경 중 미생물 군집을 분석해 특정 기능성 미생물을 예측하거나, 미생물 간 상호작용을 밝혀내는 데 AI가 큰 역할을 한다.


AI의 한계와 과제: 해석 가능성과 데이터 품질

딥러닝처럼 복잡한 AI 모델은 '블랙박스'라 불릴 만큼 해석이 어렵다. 생물학에서는 어떤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 데이터 품질이다. 잡음(noise)이 많은 생물학 데이터에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선 정제된 데이터와 통합된 오믹스 정보가 필요하다.


FAIR 원칙과 데이터 공유의 중요성

AI가 생물학 연구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데이터는 찾기 쉽고(Findable), 접근 가능하며(Accessible), 상호운용이 가능하고(Interoperable),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Re-usable). 이를 FAIR 원칙이라 부르며, 최근 생명과학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메타데이터 부족, 표준화 미비, 보안 문제 등으로 FAIR 실현에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결론]

AI는 생물학이라는 복잡계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이 논문은 AI가 빅데이터로 넘쳐나는 생명과학에서 어떻게 인간의 분석 능력을 보완하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끌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AI가 만능은 아니다. 데이터의 품질, 해석 가능성, 윤리적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 생명과학과 AI의 협업이 얼마나 정교하고 윤리적으로 이루어지느냐가 이 분야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출처 논문:

Giovanni Melandri et al. Artificial intelligence: the human response to approach the complexity of big data in biology. *GigaScience*, 2025, 14,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