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챗봇이 바꾸는 중독 자가진단의 미래
AI 챗봇과의 대화, 중독 문제를 말하는 첫 걸음이 되다 |
"중독 문제, 나만 그런 건가요?"
누군가에게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이 질문에, 이제 AI가 먼저 손을 내민다. 약물사용장애(Substance Use Disorder, 이하 SUD)는 미국을 중심으로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를 낳고 있다. 특히 오피오이드와 같은 약물로 인해 2022년 한 해에만 10만 명 이상이 과다복용으로 숨졌다. 문제는 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조차 스스로 이를 인식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로 SUD 위험군 중 스크리닝(자가진단)을 받는 비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어떨까? 그것도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익명으로 말이다. 바로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연구가 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헬스사이언스센터와 Clinic Chat, LLC가 공동 개발한 AI 챗봇 'Be Well Buddy'가 그 주인공이다. 이 챗봇은 사용자가 약물, 불안, 우울증 등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고, 자가진단까지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최근 이 시스템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파일럿 연구가 진행됐다.
AI 챗봇으로 민감한 중독 문제를 다루는 실험이 시작됐다
연구진은 약 90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7일간 AI 챗봇과의 대화를 유도했다. 챗봇은 하루 3번씩 사용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사용자가 관심 있는 주제(예: "나르칸이 뭐야?", "약을 끊고 싶지 않으면?", "불안 자가진단은 어떻게 해?" 등)에 대해 질문을 유도하거나 직접 자가진단(PHQ-2, GAD-2, DAST-10)을 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놀라운 점은 전체 참가자의 91명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챗봇과 소통했다는 것이다. 그 중 29명(32%)은 실제로 자가진단을 완료했고, 이 중 83%는 중등도 이상의 불안, 우울 또는 약물사용 문제로 분류되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권고와 함께 진료 예약 링크를 받았다. 이 가운데 절반은 실제로 치료 예약까지 진행했다.
챗봇에 대한 사용자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대다수는 시스템이 "편하고 쉬웠다", "밤 늦게도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보가 구체적이고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비판 없이 말할 수 있어 안심됐다", "사람한테 말하긴 어려운 이야기들도 챗봇에게는 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챗봇과 자주 대화한 사람이 실제로 자가진단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수십 건 이상 챗봇에 질문을 던진 이들은 중등도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 또는 약물 위험도를 보였으며, 자가진단 결과와도 일치했다. 챗봇의 활발한 대화가 문제 인식과 행동 변화를 자극한 셈이다.
이 시스템은 일반적인 생성형 AI와는 다르다. 연구진은 AI가 인터넷의 무작위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한 오답을 제시하지 않도록, 전문가가 직접 설계한 폐쇄형 데이터베이스에서만 정보를 추출하도록 설계했다. 질문이 불완전하거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경우, 관련 주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보의 정확성과 사용자 신뢰를 위한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다.
AI 챗봇이 중독 스크리닝을 바꾸고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번 파일럿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AI 챗봇이 실제로 민감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진단과 치료 예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챗봇이 제공하는 "익명성과 비심판적인 태도"는 인간 상담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챗봇이 만능은 아니다. 일부 사용자는 여전히 대면 상담을 선호하거나, 지역 내 치료 기관의 부재로 실질적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연구진은 향후 챗봇이 위치 기반 치료 정보, 예약 기능, 실시간 상담 연결 기능 등을 추가할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중독 문제는 여전히 낙인과 부끄러움이라는 벽에 갇혀 있다. 그러나 'Be Well Buddy'는 말한다. "당신이 준비될 때, 나는 여기 있어요."
출처 논문
Wright, T.; Salyers, A.; Howell, K.; Harrison, J.; Silvasstar, J.; Bull, S. A Pilot Study of an AI Chatbot for the Screening of Substance Use Disorder in a Healthcare Setting. AI 2025, 6,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