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찾아낸 희귀암, 후두 뒤편의 조용한 침입자
조기 발견만 되면 90% 이상 완치가 가능한 암이 있다. 하지만 이 암은 대부분 말기에 발견된다. 문제는 그 위치다. 코와 목 사이, 의사가 들여다보기 어려운 '비인두(nasopharynx)'라는 좁은 공간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비인두암(Nasopharyngeal carcinoma, NPC)' 이야기다. 이런 비인두암 진단에 인공지능(AI)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중국 푸단대학교와 웨스트레이크대학교, 텐센트 AI 연구팀이 공동으로 진행한 대규모 연구에서, 내시경 영상만으로 NPC를 자동 판별할 수 있는 AI 모델이 개발됐다. 연구진은 이 모델을 STND(Swin Transformer-based Nasopharyngeal Diagnostic system)라 명명했다. 이름이 다소 낯설지만, 이 기술이 가진 잠재력은 실로 놀랍다.
연구에 사용된 영상은 무려 35,000장 이상, 참여 병원은 중국 전역의 42개 병원에 달한다. AI는 영상에서 정상, 양성 비대(염증), 그리고 악성 종양(NPC)을 구분하도록 훈련받았다. 내부 검증 결과, 암과 비암을 구분하는 정확도는 AUC 0.99(거의 완벽!)에 달했고, 외부 검증에서도 AUC 0.95로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AUC는 '정확도'를 0~1 사이 값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더 정확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 임상에서 이 AI는 얼마나 유용할까? 연구진은 400장의 내시경 사진을 가지고 실제 의사들에게 테스트를 진행했다. 전문의 4명과 일반 이비인후과 의사 24명이 참가했고, AI의 도움을 받기 전과 후의 진단 정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전문의들은 AI의 도움을 받아도 정확도가 1~6% 정도만 오르는데 그쳤다. 이미 높은 수준이었던 만큼 큰 변화는 없었다. 반면 일반 의사들은 평균 7.9%의 정확도 향상을 보였고, 특히 민감도와 특이도 모두 크게 증가했다. 진단 속도도 빨라졌다. 평균 영상 판독 시간이 AI 없이 6.7초였던 것이 AI와 함께라면 5.0초로 줄어들었다.
더 흥미로운 건 경험이 적은 의사일수록 AI의 도움을 더 크게 받았다는 점이다. 경력 10년 미만의 의사들은 AI 도움으로 진단 특이도가 무려 17.7%나 상승했다. 이는 쓸데없는 조직검사(생검)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AI는 숙련된 전문의보다 일선 의료현장의 젊은 의사들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AI는 딥러닝 기술의 최신 버전인 'Swin Transformer' 구조를 활용한다. 입력된 내시경 영상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각 부분의 특징을 분석한 뒤, 이를 종합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방식이다. 처리 속도도 매우 빠르다. 400장의 영상을 불과 10초 만에 처리했을 정도다. 이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실시간 진단 보조'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아주 초기 단계의 비인두암은 점막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일반 내시경 영상으로는 식별이 어렵다. 또 연구는 대부분 정지 영상으로 진행돼, 실제 진료처럼 실시간 영상 흐름을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앞으로 영상 기반 진단을 넘어, 다양한 촬영 기법(예: 라만 분광, 형광 촬영 등)과 결합해 정밀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STND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진단을 가능하게 만들고,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며, 조기 발견으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임상 보조 도구다. AI가 의료 현장을 대체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조력자로서 활용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출처 논문:
Shi Y, Li Z, Wang L, et al. Artificial intelligence-assisted detection of nasopharyngeal carcinoma on endoscopic images: a national, multicentre, model development and validation study. Lancet Digit Heal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