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질적 연구의 조력자에서 동반자로

 

 AI는 이제 질적 데이터를 요약하고, 주제를 분류하며, 연구자와 대화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언어를 얼마나 잘 이해할까? 이제는 과학자가 되었다


"인터뷰 분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코딩 작업 하다 보면 감정적 맥락이 빠지는 것 같아."


질적 연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말이다. 데이터를 모으는 데도 힘들지만, 더 큰 산은 그 이후다. 수십, 수백 건의 텍스트를 읽고, 문장마다 의미를 붙이고, 주제를 찾아내는 지난한 작업. 그런데 이 모든 걸 인공지능이 도와준다면 어떨까?


2025년 5월, 알제리 콘스탄틴 대학교의 일리야스 하우암 박사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그의 논문은 ‘AI는 어떻게 질적 연구의 전 과정을 변화시키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Leveraging AI for Advancements in Qualitative Research Methodology* — '인공지능을 활용해 질적 연구 방법론을 혁신하다'라는 의미다.


"데이터 분석에만 10시간 걸리던 일이 1시간이면 끝나요"


하우암 박사는 최신 인공지능 기술, 특히 자연어 처리(NLP)와 기계학습(ML)을 연구에 적용해 기존 질적 연구 절차를 하나씩 자동화해 나갔다. AI는 무엇보다 속도에서 인간을 압도했다. 음성 녹음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데, 기존에는 1시간짜리 인터뷰 하나 전사하는 데만 3~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AI 기반 자동 음성 인식(ASR) 모델을 활용하자 단 10분이면 충분했다. 심지어 단어 오류율도 5% 내외로 매우 낮았다.


그다음은 ‘코딩’이다. 코딩이란 인터뷰 문장에서 특정 의미나 주제를 읽어내고 ‘이건 가족 이야기’, ‘이건 직장 스트레스’ 같은 꼬리표를 다는 작업이다. 사람은 감정과 맥락을 읽는 데 강하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연구자들이 일반적으로 50개의 인터뷰 문답을 분석하는 데 2~3시간을 쓰는 반면, AI 도구인 NVivo의 AutoCode 기능은 25분 만에 87%의 정확도로 주제 코딩을 마쳤다. 사람이 만든 결과와 87%나 일치했다는 것은, AI가 단순한 반복작업을 넘어서 어느 정도 의미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AI가 쓴 논문, 학회에서 채택되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AI 과학자(The AI Scientist)’라는 프로젝트다. 일본 스타트업 ‘사카나AI’는 완전히 자율적인 연구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도움 없이 연구 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논문까지 완성했다. 이 논문은 2025년 세계적인 인공지능 학회 ICLR(International Conference on Learning Representations)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논문이 AI가 쓴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후 사카나AI는 해당 논문을 스스로 철회했지만,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AI가 연구 보조자에서 연구 주체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인간의 통제와 감독이 필수지만, 머지않아 AI가 단독 연구자가 되는 날도 올지 모른다.


사람보다 잘 쓰는가? 감정까지 표현하는가?


하우암 박사는 AI가 문학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AI가 쓴 시와 사람이 쓴 시를 구분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AI의 시가 ‘리듬감’이나 ‘감성 표현’ 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또한 AI는 인터뷰 속 문장에서 감정을 읽고, ‘이 응답자는 화가 나 있다’, ‘이 문장은 슬픔을 표현한다’는 식으로 태그를 다는 일도 해낼 수 있다.


물론 AI는 아직도 인간의 섬세한 감정이나 문화적 맥락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아 그건 참 대단하네요~’라는 문장이 진심인지 비꼼인지 AI는 헷갈려 한다. 특히 문화나 사회적 맥락이 깊게 얽힌 문장에선 판단이 어렵다. 그래서 하우암 박사는 “AI는 보조 도구로서 탁월하지만, 해석의 깊이는 인간 연구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기계, 가장 이상적인 연구 파트너십


결국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AI는 데이터 정리, 분류, 요약 등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사람은 그 결과물을 해석하고 맥락을 읽는 데 집중한다. 이 조합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면서도, 해석의 깊이를 놓치지 않는 ‘최상의 팀워크’다.


실제로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AI와 공동으로 항체를 설계해 90% 이상 성공률을 기록했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을 제안하면, 인간 연구자는 그것을 평가하고 실행한다. AI는 ‘직감’은 없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고, 사람은 그중에서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는 질문: "AI는 믿을 수 있는가?"


AI의 발전이 눈부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윤리적, 철학적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 AI가 만든 분석 결과는 투명한가?

* 훈련 데이터에 편향은 없었는가?

* 참여자의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보호되는가?

* 결과를 오해할 위험은 없을까?


논문에서도 이에 대한 경고는 빠지지 않는다. AI가 단어 수준에서는 완벽해 보여도, 전체 문맥이나 문화적 뉘앙스를 잘못 해석하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 ‘그냥 그래요’는 진짜 ‘보통’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차이는 아직 AI가 따라잡기 어렵다.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자들에게


하우암 박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조언한다. 

“연구자는 AI에 밀려나는 존재가 아니라, AI와 함께 더 나은 연구를 만드는 동반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도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AI는 이제 단순히 빠르고 똑똑한 도구를 넘어서, 함께 일하고 토론할 수 있는 ‘동료’로 진화하고 있다. 질적 연구, 그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던 작업에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 AI와 함께 쓰는 논문은 물론이고, AI와 함께 설계하고 실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도 일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학문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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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Haouam, I. Leveraging AI for Advancements in Qualitative Research Methodology. *Journal of Artificial Intelligence* 2025, 7, Article ID 6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