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AI가 더 잘 안다?

 



인공지능이 피부색을 측정한다고 하면,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피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피부병 진단과 치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중요한 단서이자, 다양한 인종을 포괄하는 의료 기술 발전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피부색을 분류하는 대표적인 기준은 '피츠패트릭 스케일'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백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세계 인구의 피부색 다양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독일 뮌헨공대(TUM)의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이름하여, "피츠패트릭을 넘어(Beyond Fitzpatrick)" 프로젝트다.


연구진은 기존의 단점들을 극복하고자 피부색을 수치화해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은 사진 속 인물의 얼굴과 팔의 피부색을 포착해 색상 값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형 타이포로지 각도(ITA)'라는 값을 계산한다. 이 값은 피부색을 수치로 나타낸 지표다. 이후 이를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 하나는 기존의 피츠패트릭 스케일(6단계), 다른 하나는 구글이 최근 제안한 몽크 스킨 톤 스케일(10단계)이다.


흥미로운 건 이 알고리즘이 몽크 스케일 기준에서는 무려 **89~92%의 정확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반면 피츠패트릭 기준으로는 겨우 0.5~20%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연구진은 "피츠패트릭 스케일은 본래 자외선 반응성에 따라 구분한 것이라, 단순히 피부색만으로는 정확히 매칭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기준은 머리카락 색, 눈 색, 선탠 여부 같은 요소도 포함되어 있어, 사진만 보고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몽크 스케일은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을 고려해 고안된 새로운 기준이다. 10단계로 세분화된 만큼, 피부색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더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다. 연구진은 "몽크 스케일은 명확하고 포괄적인 분류 기준으로, AI 알고리즘과 결합했을 때 더욱 안정적인 결과를 낸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실제 병원에서 촬영된 환자 이미지와 AI가 생성한 가상 이미지, 총 800여 장이 사용됐다. 이들은 얼굴과 팔을 중심으로 분석됐고, AI는 사진에서 해당 부위를 자동으로 인식해 분석을 진행했다. 팔보다 얼굴 사진에서 정확도가 다소 낮은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조명, 화장, 수염 등 변수 때문이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흥미롭게도 AI가 만든 가상 이미지에서 더 높은 정확도가 나왔다. 이는 조명, 포즈, 해상도가 일정하게 통제된 덕분이다. 실제 임상 사진은 조명이나 각도가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아, 알고리즘이 일관되게 분석하기가 더 어렵다.


이 기술이 실전에서 활용된다면,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우선, **원격 피부과 진료**에서 피부색 분석이 자동화되면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환자가 집에서 보낸 사진을 바탕으로 피부색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규모 인구 데이터를 분석해 인종별 피부 질환 분포를 연구하거나, 의료 서비스의 공정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쓸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알고리즘은 피부색을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첫 걸음일 뿐"이라며, "향후에는 피부 질감, 병변 등도 함께 분석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피부과 진단은 AI가 피부색을 읽고, 의사가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의료 분야에서의 **포용성과 공정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더는 '백인 중심의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의 피부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든 것이다. AI와 피부과의 만남, 이제 막 첫 발을 뗐지만 그 발걸음은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출처 논문:

Paul Ulrich, Alexander Zink, Tilo Biedermann & Sebastian Sitaru. Beyond Fitzpatrick: automated artificial intelligence-based skin tone analysis in dermatological patients. npj Digital Medicine (2025) 8: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