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땅속을 보다: 인공지능이 토양 오염을 감지하고 예방하는 법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질은 땅에서 시작된다. 건강한 토양은 풍요로운 수확을 약속하지만, 오염된 흙은 작물의 품질은 물론 인간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 미묘한 토양 생태계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데 인공지능(AI)이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AI는 어떻게 흙의 상태를 읽고, 오염을 감지하며, 더 나아가 이를 예방할 수 있을까?
루마니아 석유-가스 대학교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려 한다. 'AI 기반 토양 오염 모니터링과 예방의 최신 동향'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지난 5년간 발표된 관련 논문 217편을 분석하며, AI 기술이 토양 건강 연구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흙 속 문제, AI가 찾아낸다
토양 오염은 생각보다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중금속(납, 카드뮴, 수은 등), 농약, 플라스틱, 석유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까지. 이들은 땅속 미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농작물로 흡수되어 결국 인간의 몸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게다가 도심 개발, 광산, 집약 농업 등 인간의 활동은 오염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 복잡한 오염 양상을 일일이 손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AI가 등장한다. 기계학습,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등 다양한 AI 기법은 대량의 환경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해 오염 징후를 포착한다. 예를 들어 드론이 찍은 토양 이미지에서 AI가 유기탄소 함량이나 수분, 질소 농도를 예측하는 식이다.
특히 "비전 트랜스포머(ViT)"라는 기술은 위성사진이나 드론 영상을 분석해 토양 상태를 시각적으로 평가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기술이 최근 토양 건강 분석 논문 79편에 등장했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
아직 갈 길 먼 토양과 AI의 만남
그렇다고 해서 토양 오염 연구에 AI가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토양 건강'과 'AI'를 동시에 언급한 논문은 222편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 '토양 오염'까지 다룬 논문은 단 하나뿐이었다.
AI 기술 중에서도 기계학습(ML)은 378건의 논문에서 사용되며 가장 활발했지만, 자연어 처리(NLP), 컴퓨터 비전, 로봇공학, 전문가 시스템 같은 다른 분야는 각각 3건 이하의 논문만 존재했다. 진화 알고리즘 분야는 아예 논문이 없었다.
이는 곧 연구의 파편화와 표준화 부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는 중금속 예측에 랜덤포레스트 알고리즘을 쓰고, 다른 연구는 식물 성장 데이터로 토양 비옥도를 측정하지만, 이들 사이에 공통된 방법론이나 데이터셋은 거의 없다. 그 결과, 연구 결과를 비교하거나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생긴다.
AI와 농업이 함께 걸어야 할 길
논문은 AI를 활용한 토양 건강 연구의 일곱 가지 주요 방향도 제시했다. 토양 상태 예측, 미생물 생태 분석, 유기탄소량 예측, 오염 물질 탐지 및 복원, 원격 영상 기반 토양 평가, 영양분 탐지, 물 관리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토양 속 미생물이나 플라스틱, 제초제 등 인간 건강과 직결되는 요소에 AI를 적용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평가다.
연구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섯 가지 미래 과제를 제안했다. 첫째는 토양학자와 AI 전문가의 협업 확대, 둘째는 다양한 AI 기술의 도입, 셋째는 연구 방법론의 표준화, 넷째는 위성, 센서 등의 데이터 통합 인프라 구축, 마지막으로는 농업과 디지털 기술을 아우르는 인재 양성이다.
토양은 식량의 시작점이자 생태계의 근간이다. 그만큼 건강한 땅을 지키는 일은 인류 모두의 과제다. AI는 이 거대한 과제를 풀어갈 열쇠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도, 기술을 제대로 쓰기 위한 '협력'과 '기획'이다.
출처 논문
Rosca, C.-M.; Stancu, A. Emerging Trends in AI-Based Soil Contamination Monitoring and Prevention. *Agriculture* 2025, 15, 1280. [https://doi.org/10.3390/agriculture15121280](https://doi.org/10.3390/agriculture15121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