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G, AI, 그리고 벌떼처럼 움직이는 지능… 자폐 진단에 새 길을 열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이름은 흔히 들어봤지만, 그만큼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도 드물다. 한 아이는 말이 늦게 트이고, 다른 아이는 눈 맞춤이 되지 않는다. 어떤 성인은 성인이 되어서야 뒤늦게 자폐 진단을 받는다. 문제는 지금도 진단의 90% 이상이 설문과 관찰, 부모 면담 같은 ‘사람의 눈’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만약 뇌파를 보고 자폐를 판별할 수 있다면? 그것도 사람 대신 AI가 수천 개의 신호를 분석해 “이 사람은 자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준다면? 브라질 연구진은 이 상상을 현실로 가져왔다. 핵심 무기는 뇌파(EEG), 머신러닝(ML), 그리고 군집지능(Swarm Intelligence)이다.

머릿속 미세한 전류, 자폐의 실마리를 담다

EEG는 말 그대로 뇌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류를 재는 장비다. 전극을 머리에 붙이면 뇌의 전기 신호가 실시간으로 측정된다. 이 뇌파에는 알파파, 베타파, 델타파 같은 주파수 대역이 있고, 이는 뇌의 휴식 상태, 주의력, 감정 상태까지 보여준다. 연구진은 바로 이 신호에 자폐의 단서를 찾았다.

이번 연구는 영국 셰필드 데이터셋의 성인 56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 중 절반은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 나머지 절반은 신경발달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연구진은 이들이 안정 상태와 시각 자극을 받는 상태에서 EEG를 측정했다. 측정 시간은 단 2분 30초, 머리에 붙인 전극은 64~128개에 달했다.


수천 개 데이터, AI가 패턴을 찾다

EEG 신호는 그 자체로 복잡하다. 전극 1개에서 나오는 신호만 해도 초당 512번 샘플링된다. 이를 60초만 기록해도 데이터는 순식간에 수십만 개다. 이를 모두 사람이 해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구진은 데이터 전처리를 먼저 했다. 일부 전극 신호가 누락되면 공간보간법(IDW)으로 채우고, 신호를 2초 단위로 나눠서 통계적 특징(평균, 표준편차), 주파수 특징(주파수대별 파워, 피크 주파수), 신호 복잡성 등을 34개 지표로 추출했다.

이후 핵심은 머신러닝이었다. 연구진은 수천 개 특징 중 어떤 게 정말 중요한지 골라내기 위해 스웜 인텔리전스(Particle Swarm Optimization, PSO)와 진화 알고리즘을 썼다. 이는 벌떼가 꿀을 찾아 움직이듯, 최적의 특징 조합을 찾아가는 기법이다.

결과는? 사람의 눈보다 더 정확하다

연구진은 추출한 특징을 원본, PSO 적용, 진화 알고리즘 적용 세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베이즈넷, 나이브베이즈, 의사결정트리, 랜덤포레스트, SVM 등 다양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돌려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PSO로 특징을 골라낸 뒤 SVM을 적용했더니 정확도가 무려 99.2%에 달했다. 원본 데이터만 썼을 때도 SVM은 99% 가까이 맞혔다. 진화 알고리즘은 선택된 특징 수가 훨씬 적음에도 93%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다.

특히 랜덤포레스트는 500개의 나무를 사용해 94% 이상을 정확히 분류했다. 이는 대부분의 임상 현장에서 쓰는 자폐 진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뇌파 진단의 강점은?

왜 하필 뇌파일까? MRI나 유전자 검사는 장비가 비싸고 해석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EEG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10분 만에 검사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신호 측정 후 몇 분 안에 분석까지 가능하도록 파이프라인을 설계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데이터셋이 작다. 56명으로 모델을 훈련한 만큼 대규모 임상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하다. EEG 측정 환경도 연구마다 조금씩 달라 오차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연구를 시작점으로 삼아 표준화된 대규모 뇌파 데이터셋을 새로 만들 계획이다.

AI 진단 보조, 새로운 가능성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진단 보조 도구’라고 강조한다. AI가 의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의사가 놓칠 수 있는 신호를 포착해 진단 정확도를 높이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자폐는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2~3세에 발견해 적절한 언어 치료, 행동 치료를 받으면 아이의 발달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 만약 EEG+AI 진단이 상용화된다면, 저소득 국가나 의료 사각지대에서도 더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AI가 분석하고, 의사가 결정한다. 그 미래가 멀지 않았다. 사람의 눈으로만 보던 증상 뒤에 숨은 신호를, 이제는 뇌파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논문
Fonseca, F.S. et al.
Supporting ASD Diagnosis with EEG, ML and Swarm Intelligence: Early Detection of Autism Spectrum Disorder Based on Electroencephalography Analysis by Machine Learning and Swarm Intelligence.
AI Sens. 2025, 1, 3. https://doi.org/10.3390/aisens101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