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 케빈 아보쉬의 '합성 사진'이 보여주는 창조적 상상력의 새로운 가능성

 

(저자들이 언급한 사진들은 저작권 때문에 여기에 싣지 못합니다. 아래 링크된 논문을 클릭하시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14744740251347940

 


서론: AI 시대, 예술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이 예술의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든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이 이제는 AI와의 협업 혹은 경쟁의 무대가 되었다. 특히 사진, 회화, 음악 등 시각·청각 예술에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하나의 "창작 주체"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예술은 단지 인간 작품의 모방에 불과할까, 아니면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창조적 존재일까?

 

이 질문에 대한 인상적인 해답을 제시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일랜드계 미국인 개념 예술가 케빈 아보쉬(Kevin Abosch)다. 그의 AI 기반 합성 사진 시리즈 'Somewhere in Los Angeles(2023)'와 'Civics(2023)'는 기존 사진 예술의 틀을 넘어서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Roberts et al.(2025)의 논문을 바탕으로, 아보쉬의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실험을 넘어 현대 사회와 예술, 기술에 대해 어떤 통찰을 주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합성 사진이란 무엇인가? — 인간의 눈과 기계의 시선 사이

 

아보쉬의 '합성 사진(synthetic photography)'은 전통적인 사진 촬영이 아닌, AI를 통해 생성된 이미지다. 그는 3개월간 로스앤젤레스 전역을 누비며 약 25만 장의 사진을 촬영했고, 이를 자신의 AI 모델 학습 데이터로 활용했다. 그 결과, 처음 보는 거리 풍경이지만 어딘가 익숙한, 현실 같지만 어딘가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탄생했다.

 

예를 들어, 농구 골대가 지나치게 낮게 설치되어 있거나, 수영장이 기하학적으로 왜곡된 모습은 현실성과 상상력이 교차하는 경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아보쉬의 합성 사진은 AI가 단순히 기존 이미지를 반복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시각적 현실을 창조하고자 하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인간-기계의 상상력 루프: 창조의 경계 확장

 

아보쉬는 AI를 단지 사진작업을 자동화하는 도구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창작 행위가 AI와의 "재귀적 피드백 루프"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만든 사진을 AI에 학습시키고,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다시 창작의 자극으로 활용하는 순환 과정이다.

 

이러한 작업은 상상력을 인간 내부에서 기계 외부로 확장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상상력은 더 이상 인간 정신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공동으로 구축할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인 셈이다. 이는 전통적인 상상력 개념에 도전장을 던지는 대담한 시도이자, 포스트휴먼 시대의 창작 윤리를 고민하게 만든다.

 

 클리셰를 거부하라: AI 미학에 대한 철학적 저항

 

많은 AI 기반 예술은 기존 예술가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일정한 미학적 공식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가 있다. 그러나 아보쉬는 이러한 '스타일 이식(style transfer)' 방식이 오히려 창작을 억누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에서 발생하는 오류(예: 글씨가 깨지거나, 사람의 얼굴이 뒤틀리는 현상)를 오히려 예술적 가능성으로 수용한다. 이른바 '글리치(glitch)'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며, 이러한 비정상성이야말로 기계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라 본다.

 

이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들뢰즈는 예술이란 끊임없이 '클리셰(상투성)'와 싸우는 행위라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보쉬의 사진은 단지 기술적 실험이 아닌, 철학적 저항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Civics' 시리즈: 이미지 정치학과 사회적 상상력

 

아보쉬의 또 다른 시리즈 'Civics(2023)'는 전 세계의 시민 저항 장면을 AI로 생성한 작품이다. 언뜻 보면 다큐멘터리 사진 같지만, 자세히 보면 문구가 무의미한 기호로 변형되고, 인물의 팔다리가 왜곡되어 있다. 이는 '딥페이크'와 같은 가짜 뉴스 이미지의 위험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아보쉬는 단지 허위 정보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관람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항의 이미지'는 진짜인가? 혹은 우리가 소비하는 '정치적 이미지'는 이미 클리셰화되어 있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는 시각 문화가 사회의 집단 상상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되묻게 한다. 동시에, AI가 단지 정보를 조작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사유하지 못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결론: 창조적 거부로서의 AI 예술

 

아보쉬의 작업은 단지 AI가 만든 이미지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곧 기존 질서와 의미를 "거부"하고, 새로운 감각과 사고의 공간을 여는 행위—에 대한 고찰이다. 이는 AI와 예술의 관계를 단순히 '인간 vs 기계'의 구도로 볼 것이 아니라, 함께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 '공동 창작의 장'으로 바라봐야 함을 시사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아보쉬가 실패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AI 출력물까지도 예술의 일부로 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현재의 AI 트렌드와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며, 오히려 '결함'이 창조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 시대의 예술은 기술적 정교함을 넘어, 윤리적·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보쉬의 합성 사진은 그 출발점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며, 앞으로의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중요한 좌표를 제공할 것이다.

 

---

 출처 논문 

 Roberts T, Lapworth A, Carter-White R (2025) Refusing clichés: artificial imagination in the synthetic photography of Kevin Abosch. *Cultural Geographies.* doi:10.1177/14744740251347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