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로봇,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 기계에 감정을 불어넣는 과학자들의 실험
인간 무용수와 함께 호흡하며 춤추는 로봇의 순간 – 기술과 감성이 만나는 예술의 접점. |
로봇이 춤을 춘다. 그런데 단순히 박자에 맞춰 팔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다. 눈앞의 무용수가 점점 빠르게 회전하자, 로봇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 돌며 속도를 조절한다. 음악이 슬픈 멜로디로 바뀌면 로봇의 동작도 부드럽고 느려진다. 이쯤 되면 단순한 ‘기계’라 부르기 어렵다. 과연 이 로봇은 춤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와 시뮬라 연구소의 연구진이 뭉쳤다. 이들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로봇에게 춤을 가르친다”는 주제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총정리하고, 로봇이 ‘표현력 있고 반응성 있는’ 무용수가 되기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를 정리했다. 그야말로 춤추는 로봇의 백서라 할 만하다.
---
기계에게 춤을 가르치는 이유
사람처럼 춤을 추는 로봇. 언뜻 보기엔 단순한 퍼포먼스 같지만, 이 목표에는 놀라운 야심이 담겨 있다. 춤은 인간의 움직임 중에서도 가장 복합적인 형태다. 리듬에 맞춰 몸을 조율하고, 파트너의 동작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까지 요구된다. 즉, 춤을 출 수 있는 로봇이라면 다른 어떤 인간 행동도 흉내 낼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로봇공학자들에게 춤은 ‘이해하기 위해 시뮬레이션한다’는 개념의 극한이다. 실제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자사의 이족보행 로봇이 춤추는 영상을 통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고, 이를 위해 전용 소프트웨어인 ‘Choreographer’까지 개발했다. 예술계에서도 무용수와 로봇의 협업은 하나의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기계가 어떻게 춤을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
표현력과 반응성: 춤추는 로봇의 두 날개
연구진은 로봇이 사람처럼 춤을 추기 위해 필요한 핵심 능력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바로 ‘표현력(expressiveness)’과 ‘반응성(responsiveness)’이다.
표현력이란, 로봇이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이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부드럽게 흐르는 선율에는 유연한 동작, 격정적인 드럼 비트에는 날카롭고 강렬한 동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움직임 패턴을 저장하고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반응성은 외부 자극—음악, 공간, 사람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능력이다. 파트너가 갑자기 멈추거나, 리듬이 빨라졌을 때, 로봇도 즉각 반응해야 한다. 마치 인간처럼.
이 두 능력을 동시에 갖춘 로봇이야말로, 진정한 ‘무용수’가 될 수 있다.
---
로봇에게 춤을 가르치는 7가지 기술
논문은 이 두 능력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각 항목은 놀라우리만큼 인간의 춤 훈련과 닮아 있다.
1. 움직임 단위 학습(Movement Primitives)
춤을 ‘스텝’, ‘턴’, ‘팔 뻗기’ 등 기본 동작 단위로 쪼개어 로봇에게 가르친다. 이 기본기를 바탕으로 더 복잡한 안무를 만들 수 있다. 요즘은 머신러닝을 통해 사람의 춤을 보고 스스로 이 동작을 분할하고 학습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2. 동작 시퀀스 생성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유려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안무를 ‘창작’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GPT 같은 텍스트 생성 기술을 변형해 춤 동작을 생성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3. 엔트레인먼트(리듬 맞추기)
음악의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 신경 회로망 기반의 리듬 동기화 알고리즘, 소위 ‘중추 패턴 생성기(CPG)’가 사용된다.
4. 모방과 리타게팅(Imitation & Retargeting)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기술이다. 특히 사람의 손동작을 로봇의 관절로 바꾸는 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AI는 여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5. 안정화 기술
복잡한 동작을 하면서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사람도 춤을 추다 넘어지면 안 되듯, 로봇도 무게 중심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강화학습이 종종 사용된다.
6. 공간 인식
무대 위에서 다른 무용수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로봇은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촉각 센서나 영상 분석이 활용된다.
7. 즉흥성(Improvisation)
모든 동작이 미리 정해진 대로만 진행된다면, 춤은 곧 생기를 잃는다. 인간 무용수처럼 로봇이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하게 하려면, 창의성을 발휘하는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최근엔 생성형 AI가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
앞으로의 로봇 무용수는 어떤 모습일까?
연구진은 미래의 춤추는 로봇을 이렇게 그린다. 인간 무용수와 같은 무대에서 함께 춤추며, 상대방의 속도, 감정, 리듬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로봇. 마치 ‘무대 위 파트너’로서의 감각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예를 들어, 모든 로봇이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비인간 형태의 로봇도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모양에 구애받지 않는’ 안무 해석 방법이 필요하다. 반응성을 높이기 위해선 지연시간을 줄이고,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컴퓨팅 성능도 요구된다. 또한 무대 환경과 감정 분위기를 고려해 동작을 조절하는 ‘상황 인지’ 기술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로봇과 춤, 기술과 예술의 융합
춤은 인간 고유의 표현이자 감정의 언어다. 그리고 로봇은 인간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설계된 기계다.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번 연구는 로봇이 예술의 영역에 얼마나 깊이 들어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춤추는 로봇은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인간과 기계의 소통 방식을 재정의할 수도 있다. 동시에 이는 인간의 움직임을 깊이 이해하려는 과학의 도전이기도 하다.
아직 로봇은 발레리나가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감정이 깃든 움직임, 음악에 반응하는 몸짓—이제 기계도 그 언어를 배우고 있다.
---
출처 논문
Wallace B, Glette K and Szorkovszky A (2025). How can we make robot dance expressive and responsive? A survey of methods and future directions. Front. Comput. Sci. 7:1575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