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혁신, 스마트폰으로 각막질환을 설명하다: KERATOCONUS AR의 등장

 



의사가 환자에게 병을 설명하는 일은 늘 쉽지 않다. 특히나 '원뿔각막증(keratoconus)'처럼 생소하고 눈의 구조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질환이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화면 위에 그려진 그림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고, 전문용어는 환자에게 너무 멀게 느껴진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상황이 겹쳐 병원 방문조차 힘들어진다면? 이 문제에 착안해 스페인의 한 연구팀이 놀라운 해결책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KERATOCONUS AR'.


이 앱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3D 각막 모델을 눈앞에 띄워 환자와 의사가 함께 질환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증강현실(AR) 어플리케이션이다.


 증강현실, 병원을 넘어서다


KERATOCONUS AR는 이름 그대로 원뿔각막증을 다룬다. 이 질환은 눈의 중심에 해당하는 각막이 점점 얇아지며 돌출돼 시야가 흐려지는 질환이다. 초기에는 증상이 미미하지만, 진행될수록 시력 손실이 심해지고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문제는 설명이다. 2차원 이미지나 말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 그래서 연구팀은 아예 3D 모델을 활용한 AR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앱은 Amsler-Krumeich와 RETICS라는 대표적인 두 가지 질환 분류 체계를 기반으로, 각 단계별로 3D 모델을 만들어 사용자 앞에 펼쳐 보인다. 완전한 각막 모델과 단면 모델을 모두 제공하며, 각 질환의 상태뿐 아니라 치료 전후의 모습까지 시각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환자, 학생, 의사 모두를 위한 앱


KERATOCONUS AR는 단순한 시청각 자료가 아니다. 실제로 이 앱을 테스트한 대상은 다양했다. 스페인의 여러 병원과 의대에서 총 116명이 참여했으며, 여기에는 환자 46명, 의사 22명, 의대생 48명이 포함됐다.


참여자 대부분이 이 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눈앞에 펼쳐지는 3D 모델을 회전시키거나 단면을 보는 기능은 많은 이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환자들은 "수술 전 불안이 줄어들었다"고 했고, 의사들은 "설명 시간이 줄고 전달력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의대생들 역시 전통적인 교재보다 훨씬 생생하게 질환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물론 몇몇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모델 간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고, 더 많은 인터랙티브 기능을 원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았으며, 앱이 실제 진료 현장이나 교육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기술 뒤의 사람들, 그리고 디자인의 힘


이 프로젝트의 주역은 기술대학의 공학자들과 안과 전문의들이다. 공학팀은 Unity와 Vuforia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앱을 개발했고, 안과팀은 실제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3D 모델을 제작했다. 시각적으로도 신경을 썼다. 밝은 색 대신 대비가 강한 색을 쓰고, 시각장애인도 구별하기 쉬운 디자인을 적용했다. 모델 간의 전후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빨간색과 파란색을 사용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이 모든 구성은 교육 심리학자인 Mayer의 '멀티미디어 학습 이론'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즉, 정보는 간결하게, 시각자료는 명확하게,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은 직관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원격의료의 가능성


무엇보다 이 앱의 진가는 원격진료에서 발휘된다. 코로나19 이후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AR 앱을 통해 질환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설명하는 과정이 이제는 집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앱을 통해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했으며, 원격진료 환경에서도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이 앱은 현재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향후 iOS 버전과 다른 안질환에 대한 확장도 계획 중이다.


 마무리하며


KERATOCONUS AR는 단순한 앱이 아니다. 기술과 의학, 디자인이 만난 융합의 결과물이자, 진료와 교육, 소통의 방식을 바꾸는 도구다. 환자와 의사의 대화가 더 이상 어렵고 복잡할 필요는 없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3D 각막 모델 하나면 충분하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의 의료용 AR 앱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시각화가 중요한 질환일수록, 그리고 원격으로 소통해야 할 때일수록, AR 기술은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의학의 미래는 점점 더 환자 중심으로, 이해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우리 손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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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José S. Velázquez, Eduardo Paños, Jose González-Cabrero, Jorge Alió del Barrio, Francisco Cavas. New augmented reality application for improving clinical education and patient-doctor interaction in remotely-assisted ophthalmology consultations. Virtual Reality (2025) 2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