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정전될 위기, AI가 해결사로 나섰다
AI가 연결한 전력 위기 대응의 퍼즐 — 이벤트, 공급업체, 장비, 시기를 아우르는 지능형 의사결정 그래프 |
전기가 끊기면, 삶도 멈춘다
지난겨울, 갑작스런 한파에 고압선이 얼어붙으면서 일부 지역이 암흑 속에 잠겼다. 전력망이 마비되자 병원, 공장, 교통시설이 줄줄이 멈춰 섰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이런 전력 비상 상황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중국 저장성의 연구진이 개발한 새로운 지능형 시스템이, 전력 위기 상황에서 긴급 장비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지식 그래프'와 '다중 에이전트 관계도'를 활용한 의사결정 플랫폼. 다소 복잡하게 들릴 수 있지만, 쉽게 말해 전력 비상사태에 필요한 장비와 공급망, 시간, 사건 데이터를 모두 한눈에 파악해 최적의 대응 방안을 AI가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앞으로 정전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력 위기 대응, 아직도 '감'에 의존한다고?
자연재해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전력망이 손상되면, 전력회사들은 즉시 복구를 위한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어떤 업체가 납품 가능한지, 이동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담당자의 경험과 일시적인 판단에 의존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장비 도착이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장비가 납품돼 혼란을 키우는 일이 빈번했다.
네 가지 축으로 움직이는 'AI 브레인'
논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차원 관계 그래프'를 제안했다. 이 그래프는 시간, 사건, 장비, 공급업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축으로 삼아, 이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시각화하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한겨울 눈보라가 불어 정전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시점에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과거 유사 사건에는 어떤 업체가 얼마나 빨리 대응했는지 등을 AI가 스스로 파악한다.
이 구조는 기존의 단순한 '누가-무엇을' 관계를 넘어서, 사건의 원인과 결과, 시간적 맥락까지 고려하는 정교한 정보망을 만든다. 덕분에 AI는 상황에 맞는 최적의 장비와 공급업체를 추천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지식 서비스 모델'이라 불렀다.
수천 건의 데이터, 말 대신 그래프로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진은 중국 국가전력공사에서 수집한 수년치 정전 대응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식 그래프를 구축했다. 여기에 정부 정책 문서, 공급업체 정보, 특허, 기술자료 등 외부 데이터까지 연계해 지식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또한 텍스트 분석 기술과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을 활용해 각종 보고서나 정책 문서에 나오는 핵심 정보를 자동으로 추출했다. 단어의 위치나 의미, 유사성을 분석해 '이 장비는 저 업체에서 공급했다'는 식의 관계를 그래프 형태로 시각화한 것이다.
진짜 효과 있을까? 실제 사례로 입증
연구진은 이 모델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최근 발생한 다섯 건의 정전 사건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제안된 시스템이 추천한 공급업체는 실제 조달된 업체와 대부분 일치했으며, 기존 방식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작년 2월, 저장성 진화 지역에 대규모 한파가 닥쳤을 때, 고압선이 끊기며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모델은 과거 유사 사례를 기반으로 발전기, 와이어 로프, 플래시라이트 등 필요한 장비와 공급업체를 정확하게 추천했다. 특히 공급 속도나 신뢰도 면에서도 기존 방식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앞으로는 '예방'도 가능하다
이 시스템이 더 발전하면, 단순히 사고가 난 뒤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사전 예방'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서 기상 조건이 악화되면, AI가 자동으로 과거 유사한 상황을 불러와 대응 계획을 사전에 세우고, 필요한 장비를 미리 배치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 공급업체들의 재고 상황이나 배송 능력까지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조합을 제안할 수 있다. 즉, 과거엔 비상시각마다 '임기응변'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과학적 예측에 기반한 '지능형 대응'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정전 없는 세상을 위한 첫걸음
전력망은 단순히 전기를 공급하는 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생명줄이다. 정전은 단지 불이 꺼지는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 산업과 교통까지 직결되는 중대한 이슈다.
이 논문이 제시한 모델은 아직 개념 설계 단계이지만, 실증 실험에서 보여준 성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지식 그래프 기술이 결합해 복잡한 전력 위기 대응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에너지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이상 전력 위기를 '감'으로 넘기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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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Si J, Liu C, Ye J, Wu J, Wang J, Hu K, Ju C and Cao Q (2025) Conceptual design of a decision knowledge service model integrating a multi-agent supply relationship diagram for electric power emergency equipment. *Front. Big Data* 8:1603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