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손, 드디어 사람 손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처럼 사과를 감싸 쥘 수 있는 로봇 손!” -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이 부드러운 로봇 손은 손가락 속에 내장된 촉각 센서를 통해 물체의 압력과 미끄러짐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이제 로봇도 '느끼며' 행동하는 시대다.


촉각 센서가 바꾼 로보틱스의 새로운 장

사과를 손에 쥘 때, 우리는 별생각 없이 적당한 힘을 준다. 너무 세게 쥐면 멍이 들고, 너무 약하면 떨어뜨린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촉각과 미세한 반응 덕분에 우리는 이런 조절을 본능적으로 해낸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촉각 피드백’을 로봇에게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MIT와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연구진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바로 이 문제에 도전했다. 이들이 설계한 로봇 손은 단순히 물건을 ‘잡는’ 것을 넘어서, ‘느끼고 판단하는’ 손으로 기능한다. 논문 제목은 다소 기술적이다. “다중 소재 3D 프린팅된 부드러운 손에 내장된 촉각 감지 시스템(An Embedded Tactile Sensing System in a Multi-Material 3D Printed Soft Hand_”.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촉각을 흉내 내려는 시도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이 연구는 단순히 로봇공학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흐리는 혁신적 도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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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손의 놀라운 정밀함… 로봇은 왜 따라갈 수 없었을까?

기계 손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산업 현장에서는 강철로 만든 로봇 팔이 물건을 집고 옮기며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로봇 팔이 실제 인간의 손처럼 섬세한 작업을 하긴 어렵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촉각 피드백’의 부재다. 지금까지의 로봇 손은 물건을 ‘봤다’ 또는 ‘잡았다’까지는 가능했지만, 그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몰랐다. 감각이 없으니 조절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섬세한 작업, 예를 들면 바늘에 실을 꿰거나, 계란을 깨지 않도록 들거나, 젖은 유리컵이 미끄러지지 않게 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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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각 센서를 ‘내장’한 부드러운 손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 로보틱스(Soft Robotics)멀티 머티리얼 3D 프린팅 기술을 결합했다. 로봇 손의 구조는 유연하고 탄성 있는 재료와 단단한 재료가 함께 사용되어 만들어졌다. 관절은 부드럽고, 뼈대는 단단하게 구성해 사람 손의 움직임을 최대한 재현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손가락 내부에 촉각 센서를 내장했다는 것이다. 센서는 단순히 덧붙인 게 아니라, 손가락을 프린팅할 때 함께 프린팅되도록 설계되었다. 덕분에 센서와 구조물이 하나처럼 움직이며, 외부 충격이나 반복 사용에도 내구성이 높아졌다.

이 센서는 압전 소자 기반이다. 손가락에 힘이 가해지면 센서가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고, 이 신호를 통해 손가락이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압력이 가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학습시켜 로봇 손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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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뜨리기 전에 감지하라!” – 미끄러짐까지 인식하는 손

이 로봇 손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미끄러짐 감지’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로봇 손이 물건을 잡고 있을 때, 물건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로봇은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손가락 끝에서 ‘살짝 벗어나는 느낌’을 감지하면 즉각 반응한다.

실제 실험에서는 플라스틱 병이나 사과 같은 미끄러운 물체를 잡은 뒤, 일부러 힘을 조금 약하게 주면 물체가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로봇 손은 이를 감지하고 즉시 힘을 조절하여 떨어뜨리지 않게 만든다. 마치 사람 손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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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마다 다른 역할, 사람처럼 분화된 구조

흥미로운 점은 각 손가락에 적용된 센서와 기능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엄지와 검지는 섬세한 움직임이 요구되므로 감도 높은 센서가 탑재되어 있고, 중지와 약지는 더 큰 압력을 감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기계 손의 인간화’를 위한 섬세한 설계다.

또한 이 손은 *동작 자체가 공압식(air-driven)으로 움직인다. 즉, 손가락이 안으로 구부러지는 방식은 공기를 밀어넣거나 빼는 방식으로 제어된다. 덕분에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도 있다. 손이 부드럽게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공기압 조절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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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을 통해 검증된 성능: 사과도, 병도, 마우스도 OK

연구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 손의 실용성을 검증했다. 사과, 물병, 고무공, 컴퓨터 마우스 등 다양한 형태와 질감을 가진 물체를 잡고 이동시키는 실험에서, 로봇 손은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특히 사과처럼 부드럽고 둥근 물체는 기존 로봇 손이 다루기 까다로운 대상이었는데, 이번 실험에서는 손가락이 감싸듯이 잡고 미세한 압력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또한 마우스처럼 비대칭적인 모양의 물체도 중심을 스스로 찾아 잡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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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공학에서 산업용 로봇까지...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

이 기술의 가장 큰 기대 분야는 보조공학이다. 손을 잃은 장애인이나 사고로 손 기능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 로봇 손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들에게 이 손은 신체의 연장이자, 삶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정밀한 조작이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도 이 기술은 큰 가능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 식품 가공: 부서지기 쉬운 과일이나 빵을 다루는 로봇

* 의료용 로봇: 섬세한 조직을 조작하는 수술용 로봇 팔

* 전자 부품 조립: 극소형 부품을 다루는 자동화 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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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싸고 복잡한 로봇 손은 이제 끝” – 3D 프린팅의 위력

무엇보다도 이 로봇 손의 또 다른 장점은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구조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교한 로봇 손은 고가의 센서, 모터, 배선으로 구성되어 수백만 원 이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3D 프린팅 하나로 전체를 만들어내고, 센서도 함께 출력된다. 유지 보수도 훨씬 쉬워졌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로봇 손을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사용자마다 손 크기, 기능, 촉감 감도 등을 설정해 프린터 하나로 ‘나만의 손’을 찍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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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 C.X.; Yap, H.K. An Embedded Tactile Sensing System in a Multi-Material 3D Printed Soft Hand. *Mak. Sci.* 2023, 7,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