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떠나는 건축 여행, 교육의 미래를 엿보다
VR 헤드셋을 쓴 두 학생이 같은 건축물을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는 모습. 한 명은 공간 구조를, 다른 한 명은 인터랙션과 시각적 요소에 집중한다. 학문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VR 체험의 단면을 보여준다. |
“디지털 다큐멘터리 게임”, 두 학과 학생의 시선은 이렇게 달랐다
요즘은 게임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교육, 예술, 심지어 역사 보존까지—게임은 다양한 분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가상현실(VR)이 접목된 게임은 현실처럼 몰입감 넘치는 학습 환경을 제공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발표된 연구 한 편은 색다른 시도로 눈길을 끈다. 터키 바흐체셰히르대학교 연구진이 만든 VR 다큐멘터리 게임, *“이스탄불에서 세다트 하키 엘뎀의 흔적을 따라서(Following the Traces of Sedad Hakkı Eldem in Istanbul)”*. 이 게임은 단순한 건축 체험을 넘어서, 교육용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한 프로젝트다. 특히 건축학과와 게임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체험했는지를 비교한 결과는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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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를 따라 VR 속 이스탄불로!
게임의 주인공은 건축계의 거장, 세다드 하키 엘뎀(Sedad Hakkı Eldem). 터키 근대 건축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의 대표 건축물 세 곳—'제이란 아파트(Ceylan Apartment)', '타슐르크 커피하우스(Taşlık Kahvesi)', '아타튀르크 도서관(Atatürk Library)'—이 게임의 주요 무대다.
플레이어는 한 건축학도. 아타튀르크 도서관에서 시작된 가상 필드트립은 엘뎀의 건축물을 직접 체험하고, 건축 요소를 수집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타슐르크 커피하우스'는 실제로는 철거된 건축물이라, VR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적 건축물의 복원과 기록을 디지털로 시도한 셈이다. 이는 게임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고차원의 교육적 가치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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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과 학생, 똑같은 게임… 전혀 다른 시선
연구진은 바흐체셰히르대학교 건축학과와 게임디자인학과 3학년생 각각 12명을 대상으로 VR 게임 체험 후 설문을 진행했다. 실험은 HTC Vive Pro를 활용한 고사양 VR 환경에서 진행되었고, 각 참가자는 약 15분간 세 장소를 자유롭게 탐색했다.
설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 VR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
2. 공간의 물리적 속성(예: 면적, 천장 높이)에 대한 인지
3. 건축적 요소에 대한 평가(예: 채광, 외부 연결성, 질감 등)
놀랍게도, 두 학과 학생들은 같은 경험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우린 공간을 느껴요” vs. “우린 게임을 봐요”
건축학과 학생들은 실제 공간 크기와 천장 높이를 상대적으로 더 정확히 추정했다. 공간의 구조나 재료, 빛의 흐름 등 물리적 특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반면 게임디자인학과 학생들은 “인터랙션(상호작용)이 부족했다”, “컬러가 덜 눈에 띄었다”며 게임의 사용성과 몰입 요소에 더 초점을 맞췄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게임디자인학과 학생 대다수가 가장 인상 깊은 공간으로 ‘제이란 아파트’를 꼽았다는 사실. 상대적으로 친숙한 주거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건축학과 학생들은 각기 다른 공간을 고루 선택해, 건축물의 기능성과 의미에 더 주목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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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반성, 그리고 미래 교육의 방향
학생들의 피드백은 교육용 VR 게임 개발자들에게 귀중한 힌트를 제공한다. 예컨대, 건축학과용 게임이라면 공간성과 재료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게임디자인학과용이라면 더 많은 인터랙션 요소와 사용자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이 연구는 단순한 실험을 넘어, VR 기술이 각 학문 분야에서 어떻게 달리 활용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같은 게임이라도, 학과에 따라 목적도 기대도 다르다”는 사실은 교육 콘텐츠 설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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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교육을 만날 때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게임이 교육이 될 수 있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에 VR이라는 새 무기를 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꽤나 긍정적이다.
현실을 닮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학생들은 단지 지식을 전달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직접 보고, 듣고, 걷고, 느끼는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더구나 그 경험이 재미있기까지 하다면?
VR이 가져올 교육의 미래, 이미 눈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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Şahin, P., Çalışkan, A., Hacıtahiroğulları, Z. V., Ceylan, S., et al. (2024). A Comparative Study on the VR Experience of Students in a Digital Documentary Game. Journal of Metaverse, 4(1), 33-42. https://doi.org/10.57019/jmv.1332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