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경험 두 번째 부분의 스크린샷/ https://doi.org/10.1007/s10055-025-01176-3



 [서론] MRI 검사, 아이들에게 왜 두려운 경험일까?


자녀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많은 부모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검사실이 너무 시끄럽다', '움직이면 안 된다는데 우리 아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혹시 마취가 필요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불안은 매우 자연스럽다. 실제로 MRI 검사는 어린이들에게 신체적 고통은 없지만, 낯선 기계 소리와 폐쇄된 공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런 불안이 크면 아이가 검사를 받기 어려워지고, 결국 의료진은 일반 마취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마취는 추가적인 비용과 위험 부담을 수반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최근에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사전 준비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배경] 기존 준비 방식의 한계와 가상현실의 가능성


과거에는 교육용 책자나 간단한 영상, 의료진의 구두 설명 등을 통해 아이들을 MRI에 대비시켰다. 이 방식들은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지만, 아이가 실제 MRI 환경을 체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특히 바쁜 병원 환경에서는 충분한 설명조차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정보 전달의 양과 질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아이의 불안이 줄어들기 어렵고, 마취 사용률은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VR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을까? 가상현실은 실제 MRI 검사실과 유사한 환경을 360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함으로써, 아이가 미리 검사 과정을 가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이때 단순히 환경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게임 요소와 심리치료 기법을 결합하여 아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까지 배우도록 설계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연구는 바로 이러한 VR 기반의 준비 방법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임상시험이다.


[연구 개요] 세 가지 준비 방식, 어떤 차이가 있을까?


헝가리 세멜바이스(Semmelweis) 대학 연구진은 총 288명의 소아 MRI 검사 대상 아동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무작위 임상시험을 설계했다. 각 그룹은 다음과 같은 준비 방법을 받는다:


1. VR 체험 그룹: 360도 가상현실 환경에서 MRI 검사 과정을 게임 형식으로 체험하고, 우주여행 콘셉트의 명상과 심리치료를 함께 경험한다.

2. 교육용 책자 그룹: 일러스트 중심의 친근한 설명서와 함께 의료진의 설명을 들으며 준비한다.

3. 통제 그룹(일반 진료): 기존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구두 설명 혹은 준비 없음.


연구진은 각 그룹에서 실제 마취가 필요한 아동의 비율, 마취약(프로포폴)의 투여량, 그리고 아이와 부모의 심리 상태(불안, 기분, 익숙함 등)를 전후로 측정한다.


[VR 프로그램의 핵심 구성] MRI 체험과 심리치료의 융합


VR 체험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실제 검사실과 유사한 환경에서 아이가 버튼을 누르거나 공을 던지는 간단한 조작을 통해 MRI 기계를 익숙하게 경험한다. 두 번째 파트는 우주선이 화성으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으며,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ACT, 수용전념치료) 기반의 명상 훈련이 포함된다.


ACT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중요한 삶의 목표를 향해 행동을 지속하는 심리치료법이다. 아이들은 VR을 통해 자기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바디 스캔', 심호흡, 주의 전환 등의 기법을 배우며, 이를 실제 검사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경험이 단순한 교육이나 정보 전달을 넘어서, 아이의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을 키워준다는 데 있다. 이는 불안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으로, 향후 의료 경험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예상되는 효과와 응용 가능성] 마취 줄이기, 병원비 절감, 더 나은 경험


이 연구의 가장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아이가 편해지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인 의료 효과와 비용 절감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VR 체험 그룹에서 마취 사용률이 현저히 낮아진다면, 병원은 더 적은 인력과 장비로 MRI를 운영할 수 있다. 부모는 불필요한 마취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아이는 마취로 인한 부작용과 회복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기술은 MRI를 넘어 다양한 의료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시경 검사, 수술 전 준비, 치과 치료 등 불안 유발 요인이 있는 절차에 VR 기반 ACT 훈련을 접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환자가 스스로 불안을 조절하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의료 서비스를 진화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판적 시각] 효과성 외에도 고려해야 할 점들


물론 모든 기술이 만능은 아니다. 첫째, VR 기기의 가격, 유지 관리, 위생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둘째, ACT 기반 명상이 아이의 발달 수준에 따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만 4~6세의 유아는 추상적 개념이나 자기 관찰 능력이 미숙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연령별 맞춤형 콘텐츠 개발과 반복 학습의 효과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셋째, 연구 설계상 첫 번째 연구조교는 무작위 배정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편향이 개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변수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 블라인드 설계나 제3자 평가 체계가 향후 연구에서는 중요할 것이다.


[결론] 기술이 아닌 경험 중심의 의료로


이 연구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아이의 경험'을 중심에 둔 의료 혁신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VR이라는 새로운 도구에 ACT와 같은 심리학 이론을 통합함으로써, 의료 현장의 준비 과정을 더욱 인간 중심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도다. 향후 실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이 방식이 표준화되어 더 많은 병원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해 '누구의 경험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번 연구는 그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출처]

Sándor Erdős, Flóra Papik, Nyáry Dorottya, et al. (2025). Comparing virtual reality-based simulation, booklet-based and standard preparation methods for pediatric magnetic resonance imaging (MR-VR): study protocol for a randomized clinical trial. Virtual Reality, 29:95. [https://doi.org/10.1007/s10055-025-01176-3](https://doi.org/10.1007/s10055-025-01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