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속 낯선 사람과 친구, 누가 더 몰입할까?

 

가상현실 회의실에서 아바타로 만난 참가자들. 친구일수록 대화가 더 활발하고 몰입도가 높았다.


가상현실(VR)에서의 만남,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얼마나 어색할까? 아니면 오히려 더 솔직하고 활발할까? 바르셀로나 대학교 연구팀이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연구는 낯선 사람들과 친구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지를 비교하며, 이들이 느끼는 '함께 있음의 감각'과 대화의 질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 실험은 특히 '소셜 VR(Social VR)'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타버스, 원격 회의, 온라인 협업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디지털 아바타로 소통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익숙한 사람과의 VR 대화가 더 효과적일까, 아니면 오히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신선한 소통을 가능하게 할까?


VR 회의실 속 실험, 친구 대 낯선 사람


연구팀은 총 50명의 참가자를 친구 그룹과 낯선 사람 그룹으로 나눴다. 각 그룹은 3\~4명으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실험을 이끄는 진행자가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본인의 외형을 닮은 3D 아바타를 착용한 채 가상 회의실에 입장했다. 회의 주제는 'SNS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외모가 사회적 반응에 미치는 영향', '명상이나 요가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 등 일상적인 주제였다. 진행자는 주제만 제시한 뒤, 자유로운 토론을 유도했다.


대화 시간은 평균 17분가량. 참가자들의 발언 시간, 발언 횟수, 말의 길이, 대화 흐름(누가 누구에게 말을 이어가는지) 등이 꼼꼼히 기록되었고, 대화 이후에는 설문과 에세이 작성을 통해 각자의 경험을 평가했다.


흥미롭게도, 친구 그룹은 발언량이 더 많고, 대화의 흐름도 더 자연스러웠다. 발언이 두 명 사이에서 오가는 '다이애드'(dyad) 구조나 세 명이 순환적으로 대화하는 '서클'(circle) 구조도 친구 그룹에서 더 자주 나타났다. 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더 활발하고 균형 잡힌 소통이 일어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참가자들이 작성한 에세이의 감정 분석 결과, 친구 그룹이 낯선 사람 그룹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표현했다.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진짜 친구랑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반면 낯선 사람 그룹에서는 "처음엔 어색했다", "조금 불편했다"는 표현도 있었다.


네 명의 참가자가 토론하는 연속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시나리오. 각 참가자는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가지고 있다. 


'함께 있음'의 감각, 친구일수록 강하다


이 연구에서 핵심적으로 분석된 개념은 '공존감(copresence)'이다. 이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가상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심리적 감각을 의미한다. 실험 결과, 친구 그룹은 공존감을 더 강하게 느꼈다고 보고했다. 이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기술적으로는 동일한 아바타, 동일한 환경이 제공되지만, 심리적인 친숙함이 이러한 감각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점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존재감(presence)'—즉, 내가 VR 공간에 있다는 느낌—은 친구든 낯선 사람이든 비슷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VR 기술이 제공하는 몰입 경험은 사용자 간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존감'—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느낌—은 분명 친구 사이에서 더 강했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 관계의 힘


이 연구는 가상현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사이의 심리적 연결이 소통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고화질 아바타나 정확한 모션 트래킹만으로는 진짜 '만남'을 구현할 수 없다. 친구라는 사회적 관계, 서로에 대한 익숙함이야말로 가상 공간에서도 진정한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향후 메타버스 플랫폼 설계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 구성된 가상 회의에서는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도입하거나, 대화의 흐름을 도와주는 중재자(모더레이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가상현실이라는 미래의 소통 공간에서 '관계'가 여전히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져도,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건 익숙함과 신뢰라는 인간적인 요소다.

출처 논문

Tütüncü EK, Oliva R and Slater M (2025) Strangers and friends meet in virtual reality: the influence of prior acquaintance in social VR scenarios. Front. Virtual Real. 6:1569708. doi: 10.3389/frvir.2025.1569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