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전기 먹는 하마라고? 이젠 전기를 만들어주는 똑똑한 배터리다
전기차가 늘어나면 전기료도 늘어날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타북 대학교 연구팀은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전기차가 ‘전기 먹는 하마’가 아니라, 집에서 전기를 아끼고 심지어 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이 연구는 ‘마이크로그리드’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마이크로그리드는 말 그대로 ‘작은 발전소’를 뜻한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집안에서 쓰는 작은 전력망이다. 문제는 태양과 바람은 마음대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잠잠하면 전기가 모자라고, 반대로 햇빛이 쨍쨍하거나 바람이 세게 불면 전기가 남아돈다. 여기에 전기차까지 덜컥 충전하려고 하면? 전력망이 감당하기 어렵다.
마이크로그리드의 똑똑한 두뇌, 인공지능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진은 인공지능(AI)을 불러왔다. 이번 연구는 세 가지 AI 기술을 한꺼번에 마이크로그리드에 심었다.
첫 번째는 날씨 예측 AI다. ConvLSTM이라는 이름의 딥러닝 모델을 사용해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을 15분 단위로 예측한다. 무려 98.7%의 정확도로 내일의 햇살과 바람을 미리 알려준다.
두 번째는 강화학습 기반 스케줄러다. 배터리를 언제 충전하고 방전할지, 전기차는 언제 충전할지 AI가 스스로 결정한다. 기존에는 사람이 ‘룰’을 정해두면 기계가 그대로 따랐다면, 이제는 AI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계속 찾아낸다.
세 번째는 연합 학습(Federated Learning)이다. 전기차 주인의 데이터는 민감하다. 언제 차를 타고 나갈지, 얼마나 충전할지 등은 개인 정보다. 그래서 연구팀은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 각 집에서 AI가 학습한 결과만 모아 모델을 발전시키는 방식을 썼다.
전기차가 발전소가 되는 시대
그럼 실제 효과는 얼마나 될까? 연구진은 가상의 주택 500곳과 5대의 전기차가 연결된 마이크로그리드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AI가 배터리를 관리하자 최대 전력 피크가 22% 줄었고, 배터리 충방전 오차도 70% 줄어들었다. 덕분에 배터리 수명이 늘어나고, 전기료도 절감됐다.
특히 전기차는 ‘양방향 충전’을 한다. 필요할 땐 전기차 배터리가 집에 전기를 공급해준다. 덕분에 갑자기 정전이 나도 전기차가 냉장고나 의료기기에 전력을 공급한다. AI는 200밀리초 안에 긴급 모드로 전환해 중요한 전자기기가 꺼지지 않도록 한다.
바람과 햇빛을 더 잘 쓰는 법
태양광 발전은 날씨에 따라 효율이 뚝 떨어지기 쉽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ConvLSTM 기반 MPPT(Maximum Power Point Tracking) 기술을 적용했다. 쉽게 말해 태양광 패널이 실시간으로 ‘최적의 전기 생산점’을 찾아내도록 도와준다. 덕분에 기존 방법보다 발전 효율이 6.5% 높아지고, 구름이 끼거나 그림자가 생겨도 손실이 줄어든다.
풍력 발전에도 AI가 투입됐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약해졌다 하면 발전기에는 큰 스트레스가 걸린다. 연구팀은 Gradient Boosted Regression Tree(GBRT)라는 기법을 써서 풍속이 요동쳐도 날개 각도를 즉시 조절해 발전기의 토크 변동을 41% 줄였다.
실험실을 넘어서 실생활로
연구는 MATLAB과 Simulink 환경에서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됐다. 실제 마이크로그리드 상황과 최대한 비슷하게 조건을 맞춰 테스트했다. AI는 실시간으로 전력 수요와 공급을 계산해 가정, 배터리, 전기차 간 전력을 분배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앞으로 실제 주택가에 적용되면 대규모 정전에도 일부 가구는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본다. 전기차가 이동형 배터리가 되어 언제든지 집에 전기를 공급해주고, 남는 전기를 이웃과 공유하는 ‘커뮤니티 그리드’ 개념도 가능하다.
남은 과제는?
물론 한계도 있다. 현재는 시뮬레이션 단계라 실제 가정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통신 지연 문제, 데이터 품질 문제, AI가 갑자기 오작동할 경우 대비책 등도 고민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실시간 위성 데이터와 다중 센서 융합 기술, 에지 컴퓨팅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집집마다 작은 발전소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연구는 전기차와 AI, 그리고 재생에너지가 만나면 우리의 집이 곧 발전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머지않아 주차된 전기차 한 대가 동네 전기까지 책임지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출처 논문
Alenazi, M. Machine Learning-Optimized Energy Management for Resilient Residential Microgrids with Dynamic Electric Vehicle Integration. J. Artif. Intell. 2025, 7, 202–230. https://doi.org/10.32604/jai.2025.066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