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당신의 화장품도 설계한다?

인공지능이 바꿔놓는 화장품의 미래

“내 피부에 딱 맞는 화장품,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감에 의존해 하나씩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인공지능(AI)이 화장품 개발에도 뛰어든 것이다. 성분 조합, 사용감, 안정성, 심지어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까지 AI가 미리 예측한다. 이른바 ‘똑똑한 화장품’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사피엔자 대학교와 IDI-IRCCS 피부연구병원 연구진은 최근 논문을 통해, AI가 화장품 개발의 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미래의 화장품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에 들어올지 짐작할 수 있다.



시도는 끝났다, 이제는 ‘예측의 시대’

전통적인 화장품 개발은 ‘해보고, 안 되면 다시’의 연속이었다. 점성, 향, 안정성, 자극 여부 등 확인해야 할 요소가 많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피부 트러블은 제품의 생명을 단숨에 끊어놓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AI가 이런 고민을 덜어준다. 화장품을 구성하는 계면활성제, 폴리머, 향료, 방부제, 항산화제, 프리바이오틱스 등 각각의 성분에 대해, AI는 사전에 ‘이 조합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해준다. 예를 들어, 특정 계면활성제가 얼마나 거품을 잘 내는지, 독성이 있는지, 자연 분해는 잘 되는지 등을 AI가 분석한다. 수백 개의 샘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 정확도는 무려 77%에 달한다고 한다.




AI가 짚어주는 향기, 촉감, 안정성까지

향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조향사들이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래프 신경망(GNN) 같은 AI 기술이 ‘좋은 향기의 분자 구조’를 분석해 새로운 향료 조합을 제안해준다. 사용자의 감정 반응까지 고려해 향을 설계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사용감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크림이 부드럽게 느껴지는지, 끈적이지 않는지—이런 주관적인 요소도 AI는 점도, 탄성, 전단응력 등 물리적 데이터를 학습해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질감’을 예측해낸다. 예측 정확도는 무려 84% 수준이다.



피부 자극? AI가 먼저 알려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피부 자극과 독성 예측이다. 기존에는 동물 실험이 주된 방법이었지만, 윤리적 문제와 비용 문제로 이제는 대체 방법이 요구되고 있다. AI는 이런 상황에 적합한 해결책이다.

연구진은 3,400건 이상의 동물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학습시켰고, 이 모델은 피부 독성 유무를 80% 이상 정확도로 예측했다. 이는 기존 동물 실험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이다. 유럽연합이 2013년부터 화장품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한 상황에서, 이런 기술은 규제 대응에도 큰 힘이 된다.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AI는 화학구조를 분석해 ‘이 성분은 알레르기를 일으킬 확률이 있다’고 알려준다. 실제로 157개의 방부제를 분석한 결과, AI는 그중 15개가 신경 독성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고, 이 중 상당수가 기존 논문이나 실험에서도 문제 성분으로 거론된 바 있다.




맞춤형 화장품? AI가 피부 마이크로바이옴까지 본다

프리바이오틱스(피부 유익균 먹이) 성분을 넣은 샴푸나 데오드란트가 냄새 감소, 비듬 완화, 피부 수분 증가 등의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도 등장했다. 이 모든 과정도 AI가 설계했다. AI는 사용자의 피부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군집)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성분이 어떤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지를 알려준다.

나아가 AI는 사용자 사진이나 뇌파 반응까지 분석해 어떤 제품이 ‘만족도’가 높을지를 예측할 수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용자가 화장품을 바르는 동안 측정한 뇌파 데이터를 통해 ‘좋아한 제품’을 AI가 75% 이상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장품도 ‘윤리적 AI’를 써야 한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그렇듯, AI 역시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구진은 특히 AI가 특정 인종, 성별, 피부색을 과도하게 반영하거나 배제할 위험성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학습 데이터가 대부분 밝은 피부의 사용자라면, 어두운 피부톤에 대한 예측은 부정확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2024년부터 ‘AI법(AI Act)’을 도입해, 의료 및 소비자 제품에 활용되는 AI는 훈련 데이터의 품질, 알고리즘의 투명성, 사용자 설명 가능성, 데이터 보안 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규정했다. 화장품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AI와 화장품, 더 가까워질 미래

연구진은 이번 논문을 통해 "AI는 화장품 산업의 기술 혁신일 뿐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맞춤형이며, 더 윤리적인 소비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기술 개발자, 피부과 전문의, 소비자, 그리고 규제 기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미래에는 당신의 피부 상태, 유전자, 감정 상태까지 반영해 '당신만을 위한 크림'을 AI가 만들어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도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겠지만 말이다.




출처

Di Guardo, A., Trovato, F., Cantisani, C., Dattola, A., Nisticò, S.P., Pellacani, G., & Paganelli, A. (2025). Artificial Intelligence in Cosmetic Formulation: Predictive Modeling for Safety, Tolerability, and Regulatory Perspectives. Cosmetics, 12(4), 157. https://doi.org/10.3390/cosmetics1204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