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본 배터리”: 인공지능이 그리는 배터리의 미래
글로벌 배터리 경쟁 시대. 과연 내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배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숫자와 그래프 대신, ‘이미지’로 말이다.
하버드대와 LG에너지솔루션의 공동 연구팀은 배터리 데이터를 이미지로 변환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만든 새로운 딥러닝 방식, ‘True-2D ResNet’을 개발했다. 이제 인공지능은 단순히 숫자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마치 MRI처럼 배터리 내부의 상태를 이미지로 보고 해석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배터리를 이미지로 본다고요?”
기존의 배터리 성능 예측은 숫자, 그래프, 그리고 복잡한 수식의 영역이었다. 배터리의 충전과 방전 곡선을 일차원(1D) 데이터로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해석해 수명을 예측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실에서 수집되는 배터리 데이터는 매우 복잡하고 불균형적이다. 예를 들어, 실생활에서 배터리를 쓸 때는 매번 동일한 조건이 아니다. 온도도 다르고, 충전 속도도 다르며, 심지어 충전하는 구간조차 다르다.
이런 데이터는 1D로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손실된다. 마치 사진을 흑백으로 바꿔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연구팀은 전혀 다른 시도를 했다. 충전과 방전 곡선을 2차원 이미지로 바꿔, 각 곡선 안쪽을 픽셀로 채운다. 다시 말해, 데이터를 이미지로 ‘그려낸’ 것이다. 이 2D 이미지를 ResNet이라는 딥러닝 모델에 입력하면, AI는 패턴을 직접 보고 학습하게 된다.
왜 2D가 1D보다 강력한가?
첫째, 2D 이미지에는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기존 방식은 SOC(State of Charge)나 시간에 따른 전압만을 1차원 곡선으로 입력했다면, 2D 이미지는 충·방전 곡선의 모양과 넓이, 픽셀 간의 상대 위치 등 공간 정보를 함께 포함한다.
둘째, 기존의 통계적 기법인 PCA(주성분 분석)에서도 2D가 우위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PCA는 데이터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부분만을 골라낸다. 그런데 1D 곡선에서는 변화가 적은 고전압 구간이 무시되기 일쑤였다. 반면, 2D 이미지에서는 이 구간도 픽셀 단위로 반영되어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셋째, 모델 훈련 속도도 빨라졌다. 1D 모델은 800번 학습해도 성능이 정체됐지만, 2D 모델은 단 50번의 학습으로도 수명을 정확히 예측했다. 게다가 2D ResNet은 중간 단계의 특징 추출 과정 없이도, 이미지 자체를 보고 중요한 특징을 스스로 찾아낸다. 이건 딥러닝이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성능은 어땠을까?
연구팀은 LG에너지솔루션이 제공한 대규모 배터리 실사용 데이터를 이용했다.
- 첫 번째 데이터셋: 약 2백만 개의 사이클을 포함한 전기차용 대형 파우치 셀
- 두 번째 데이터셋: 실제 환경에서 3년간 수집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327개 모듈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모델을 비교해본 결과, 2D ResNet이 RUL(잔존 수명) 예측에서 최고의 성능을 보였다. MAPE(평균 절대 비율 오차) 기준으로, 1D 모델은 약 7~8%대의 오차를 보인 반면, 2D ResNet은 5.9%까지 줄어들었다. 더욱이 이는 기존 논문들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뿐만 아니라, 2D 방식은 기존 방식이 취약한 “곡선 경계 변화”나 “SOC 범위의 비일관성” 같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줬다. 왜냐하면 이미지에서는 충전 구간이 어디든 간에 픽셀 자체가 위치 정보를 포함하므로, 인공지능은 오히려 더 많은 힌트를 얻게 되는 셈이다.
‘이미지로 보는 배터리’가 여는 새로운 세상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실용성이다. 실험실의 이상적인 조건이 아닌, 실제 환경에서 수집된 데이터에 대해서도 2D 모델은 안정적이고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기술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 스마트폰 등 배터리가 쓰이는 모든 영역에서 수명 예측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지금까지는 “배터리 상태는 써봐야 안다”는 불확실성이 있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사전에 이를 예측해줄 수 있다.
앞으로 이 기술은 더 복잡한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 결함 탐지, 급속 충전 조건에서의 열화 예측, 혹은 충전 전략 최적화 등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결론: AI는 이제 '보는 눈'을 가졌다
이제 인공지능은 단지 숫자를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눈으로 이미지를 보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며, 그것을 미래 예측에 활용하는 수준까지 왔다.
‘True-2D ResNet’은 배터리 기술과 AI의 융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능성의 증거다. 전기차, 에너지 저장, 스마트 디바이스가 점점 더 보편화되는 지금, 배터리의 미래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은 필수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어쩌면 숫자가 아니라, 이미지 안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출처:
Cao, Y., Wang, M., Byeon, M., Chen, X., Choi, J., & Li, X. (2025). True‐2D ResNet Approach on Battery Data Images for Machine Learning Performance Prediction. Advanced Intelligent Systems, 2500279. https://doi.org/10.1002/aisy.202500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