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다리가 동물처럼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흙길이든 잔디밭이든, 계단이든 장애물이 있든, 강아지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걷거나 뛰거나 멈춘다.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동물이 가진 ‘보행의 지능’이다. 그런데 로봇은 아직 이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을 달아도, 한 가지 걷기 방식만 고집하거나 장애물에 걸려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영국 리즈대와 영국 UCL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는 다르다. 이들은 네발 로봇이 동물처럼 상황에 맞춰 걷는 방식을 배우도록 만드는 새로운 제어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복잡한 지형도 척척 넘어가고, 예상 못한 장애물에도 넘어지지 않고 다시 균형을 잡는다. 마치 살아있는 동물의 다리처럼 말이다.


동물의 다리를 로봇에 이식하다?

기존의 네발 로봇은 대체로 ‘딱 하나의 보행 패턴’을 학습해 움직인다. 예컨대 평지를 달릴 때 배운 걷는 법으로 흙길이나 잔디밭도 가려 하다 보니 금세 비틀거린다. 반면 동물은 다르다. 천천히 걸을 땐 아장아장 걷고, 빨리 달릴 땐 달리고, 갑자기 장애물이 나타나면 튀어오르거나 독특한 ‘프롱크(pronk)’ 같은 특수한 점프 보행으로 위기를 피한다. 이는 동물이 상황에 따라 수십 가지 보행법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동물이 보행을 바꾸는 핵심 원리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에너지 효율과 안전성을 고려해 최적의 보행을 선택하는 전략. 둘째, 다양한 보행을 기억하고 필요할 때 즉시 꺼내 쓰는 ‘보행 기억 장치’. 셋째, 예상 못한 충격이나 장애물에도 즉시 다리의 움직임을 조절해 균형을 되찾는 능력.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 로봇에 심었다.


실제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연구팀은 이 아이디어를 실제 로봇에 적용했다. 실험에 사용한 것은 소형 네발 로봇. 기존 방식으로 학습된 로봇은 평지에서만 잘 걷고, 조금이라도 울퉁불퉁한 땅에서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반면 새 프레임워크를 적용한 로봇은 달랐다. 평지뿐 아니라 바닥에 나무 조각이 깔린 곳, 잔디밭, 미끄러운 경사로, 균열이 많은 콘크리트 위도 거뜬히 걸어 다녔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제로샷(zero-shot)’ 능력이다. 로봇은 훈련 때는 평지에서만 보행을 배웠다. 그런데 실제로는 훈련받지 않은 험한 지형도 그대로 돌파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로봇이 진짜로 ‘배운 것을 상황에 맞게 새로 적용’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기존 로봇은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면 그대로 쓰러졌지만, 이 로봇은 순간적으로 특수한 점프나 엇박자 보행으로 균형을 되찾았다. 마치 숲 속을 달리던 사슴이 미끄러운 돌 위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로봇의 미래, 동물의 지능을 품다

연구팀의 목표는 단순히 ‘강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 만들어 낸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보행 지능을 로봇에 옮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로봇은 자율주행차가 갈 수 없는 거친 야외나 재난 현장에서도 인간 대신 활약할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예컨대 로봇이 더 복잡한 지형에서 더 많은 변수에 대응하려면 센서 기술과 데이터 처리 능력도 발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동물에서 배운 원리를 인공지능에 녹여내면 로봇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길을 걷다 네발 로봇이 돌발 상황에도 휙 몸을 돌려 장애물을 피하는 날. 그날은 생각보다 멀지 않을지 모른다!


출처 논문
Humphreys, J.; Zhou, C. Learning to adapt through bio-inspired gait strategies for versatile quadruped locomotion. Nature Machine Intelligence. https://doi.org/10.1038/s42256-025-01065-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