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포가 떠나는 여행’…NFT와 블록체인이 연 암 연구의 길



누군가 병원에 조직을 기증하면, 그 세포는 어디로 갈까? 연구실 냉동고에 잠들어 있던 그 작은 세포 덩어리가 세계 곳곳의 연구실을 여행하며 신약 개발의 단서를 제공한다면?

이번에 발표된 연구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 방법을 제시했다. 이름하여 ‘분산형 바이오뱅킹 플랫폼’. 암 연구의 혁신 도구로 주목받는 오가노이드를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블록체인과 NFT(대체불가능토큰)를 접목한 것이다.


오가노이드, 그리고 환자 정보의 딜레마

먼저 오가노이드를 알아보자. 오가노이드는 환자의 종양에서 떼어낸 조직을 3차원으로 배양한 작은 ‘미니 장기’다. 환자에게 맞춤 치료법을 찾거나 신약 후보를 시험하는 데 쓰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환자가 조직을 기증하면, 그 뒤로 어떤 연구에 쓰이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NFT로 만든 ‘디지털 쌍둥이’

이런 딜레마를 풀기 위해 연구진은 ‘디지털 쌍둥이’ 개념을 꺼냈다. 환자와 연구자, 그리고 오가노이드를 NFT로 만들어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de-bi(디-바이)’라고 부른다.

이 NFT는 단순한 소유권 증서가 아니다. 오가노이드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로 보내졌는지, 어떤 실험에 쓰였는지 모두 기록된다. 환자는 자신의 조직이 어떤 연구에 쓰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원하면 관련 정보를 받거나 연구자와 의견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분산형 바이오뱅킹, 어떻게 구현했나

연구팀은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운영하는 ‘휴먼 캔서 모델 이니셔티브(HCMI)’라는 실제 오가노이드 뱅크를 사례로 삼았다. 이곳에서는 수천 개의 암 조직 모델이 전 세계 연구자에게 배포된다. 연구팀은 이 조직 모델 하나하나에 NFT를 발급해 디지털 쌍둥이를 만들었다.



연구자도 환자도 모두 이득

기존 방식에서는 기증된 조직의 80~90%가 사용되지 않고 버려졌다. 연구자 간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아 같은 실험이 여러 번 반복되고, 귀중한 자원이 낭비됐다. 하지만 ‘de-bi’ 플랫폼에서는 남는 조직도 필요한 연구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다.

또 연구 과정에서 새로 밝혀진 유용한 정보는 다시 환자에게 돌아간다. 필요하다면 환자가 추가로 조직을 기증해 연구에 힘을 보탤 수도 있다. 기증자, 연구자, 병원이 ‘공동 주인’이 되는 구조다.


생명과학과 블록체인이 만난 ‘바이오메타버스’

이 연구는 단순히 오가노이드 연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연구팀은 이를 ‘바이오메타버스(Biomediverse)’라고 부른다. 생명과학 연구에 참여하는 누구나, 환자부터 연구자, 병원까지 모두가 연결되고 정보를 공유하며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거대한 네트워크다.

언젠가 내가 기증한 조직 덕분에 다른 누군가가 치료받을 수도 있고, 내 치료법이 더 나아질 수도 있는 미래. NFT와 블록체인 덕분에 이런 상상이 조금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



출처 논문
Gross M, Dewan A, Macis M, Budd E, Eifler M, Odeniran O, Kahn J, Miller RC and Sanchez W (2025). Decentralized biobanking platform for organoid research networks. Front. Blockchain 8:1510429. https://doi.org/10.3389/fbloc.2025.15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