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플랫폼, 얼마나 쓸모 있을까?
보이지 않아도, 더 자유롭게
한 남자가 혼잡한 도심을 걷는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음성 안내를 따라 목적지로 향한다. 신호등,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까지. 화면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보이는 것처럼’ 이동한다. 기술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들, 정말 시각장애인을 충분히 돕고 있을까?
전 세계 시각장애인은 약 22억 명. 이들에게 기술은 삶을 여는 열쇠가 된다. 플랫폼의 사용성(Usability)은 이 열쇠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판별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지금껏 많은 기술이 ‘정상인 기준’으로 설계되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늘 뒷전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인도네시아 잠베르대학교 연구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플랫폼의 ‘사용성’을 본격적으로 짚어봤다. 최근 5년간 발표된 137편의 논문 중 49편을 엄선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또 어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연구했을까?
연구는 PRISMA라는 시스템 리뷰 방법론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이는 마치 여러 조각난 정보를 퍼즐처럼 맞춰가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Scopus 데이터베이스에서 시각장애인, 접근성, 플랫폼, 사용성 등을 키워드로 137편의 논문을 찾았다. 중복을 제거하고, 내용이 부실하거나 주제에서 벗어난 논문을 제외한 뒤 49편의 논문만을 정밀 분석했다.
이후 주제를 ‘접근성’, ‘내비게이션’, ‘일상생활’, ‘스크린 구성’, ‘오디오 가이드’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해 패턴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플랫폼들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평가 방법이 쓰였는지를 함께 분석했다.
플랫폼, 무엇이 잘 되고 무엇이 부족했나
접근성: 절반의 성공
49편 중 절반에 가까운 24편이 ‘접근성’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단순히 ‘쓸 수 있는가’를 넘어, 시각장애인도 직관적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한 예로, mBRAILLE이라는 앱은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통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앱을 다룬 논문에서는 참여자 수를 늘리고 실사용 환경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연구들은 웹사이트나 앱이 지나치게 시각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즉, ‘사용 가능’은 곧 ‘사용하기 쉬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비게이션: 실외도 실내도 문제
두 번째로 많이 언급된 주제는 내비게이션. BlindRouteVision, NavCog3 같은 앱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길찾기 도구다. 실제로 사용자 만족도도 높고, 음성 피드백으로 방향 안내도 잘 된다.
하지만 문제는 실내에서의 내비게이션. 쇼핑몰이나 병원 같은 복잡한 구조에서는 GPS가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일부 연구는 비콘이나 Wi-Fi 기반 실내 위치 추적 기술을 실험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일상생활: 앱이 삶을 바꾸다
일상생활을 돕는 플랫폼도 주목받았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요리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일상적 활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게 해주는 앱들이다.
이 중 일부는 ‘점자 기반 입력’ 기능까지 도입해 눈에 의존하지 않고도 글을 쓰게 돕는다. 하지만 여전히 ‘직관적이지 않은 인터페이스’, ‘복잡한 조작’ 등 문제도 제기됐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습관과 직관을 이해하는 디자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화면 구성과 터치스크린: ‘보이지 않는’ 불편함
터치스크린은 시각장애인에게 꽤 도전적인 장벽이다. 버튼의 위치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손끝의 감각만으로 기능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앱은 화면을 구역으로 나누고, 특정 제스처로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작동이 많고, 학습 곡선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오디오 가이드: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기술
놀랍게도,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된 건 ‘오디오 가이드’였다. 말 그대로 소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은 터치보다 음성을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한다고 답했다.
오디오 기반 플랫폼은 조작이 단순하고 실시간 피드백이 가능해, 사용자의 자율성을 크게 높여준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 준 셈이다.
평가 기준은 뭐였을까?
플랫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주로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 SUS (System Usability Scale): 사용자가 얼마나 쉽게 쓸 수 있는지를 점수로 나타낸다. 100점 만점 중 89점 이상을 받은 앱도 있었다.
- Think Aloud: 사용자가 앱을 쓰며 느끼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게 하여 문제점을 발견하는 방법.
- 휴리스틱 평가: 전문가들이 미리 정한 기준에 따라 직접 사용해보며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
이 외에도 사용자 인터뷰, 관찰, 실험 등 다양한 방식이 활용됐다.
이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
이 연구는 단순한 ‘정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플랫폼 개발자, 디자이너, 정책 입안자에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진짜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누가, 어떻게 쓸 수 있도록 하느냐이다. 이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아닌, ‘각자를 위한 디자인’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다.
출처
Adnan, F., Putra, J. A., Agustiningsih, M. D., Oktaviana, E., & Robi’atul Adawiyah, N. A. (2025). Exploring the usability of platforms for individuals with visual impairments: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Frontiers in Computer Science, 7, 1601621. https://doi.org/10.3389/fcomp.2025.160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