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물건을 더 잘 잡게 만드는 법: '꽉 잡기'보다 똑똑한 움직임이 중요하다

로봇이 예측 제어 기술을 활용해 나무 블록을 안정적으로 집어 올리는 장면. 단순한 힘이 아닌, 궤도 조절을 통한 정밀한 제어의 예시다.

로봇이 물건을 잡다 놓쳐버리는 장면은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일상적인 작업처럼 보이는 물체의 집기와 옮기기(pick-and-place)조차도 로봇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슬립(slip)', 즉 물체가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는 현상이다. 로봇의 손가락이 아무리 단단히 쥐고 있어도, 미끄러지는 물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작업은 실패로 끝나기 쉽다.

최근 Nature Machine Intelligence에 실린 "로봇 조작에서 효과적인 미끄럼 제어를 위한 생체모방 궤적 변조(Bioinspired trajectory modulation for effective slip control in robot manipulation)"(Nazari et al., 2025)은 이 문제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는 물체가 미끄러지면 손가락의 힘을 키워 이를 막으려 하지만, 이 연구는 오히려 '움직임의 궤도(trajectory)를 조절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아이디어는 인간의 행동에서 영감을 얻었다.




슬립 문제: 로봇이 인간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

인간은 물체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손가락의 힘만이 아니라 팔 전체의 움직임을 빠르게 조정해 이를 막는다. 이를테면 가방이 손에서 미끄러질 때, 단순히 더 꽉 쥐는 것만이 아니라 팔을 순간적으로 위로 들어올리거나 속도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예측적 행동(predictive control)'은 인간의 신경계가 미래를 빠르게 예측하고 조절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많은 로봇 시스템은 여전히 '반응적 행동(reactive control)'에 의존한다. 물체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힘을 키우는 방식인데,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섬세한 물건을 다룰 때는 손의 힘을 세게 하는 것이 오히려 파손을 유발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로봇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손가락의 힘을 조절하는 기능이 부족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진은 '움직임의 궤도'를 조절함으로써 물체의 슬립을 예방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핵심은 로봇이 스스로 앞으로 일어날 미끄러짐을 예측하고, 궤도를 조정해 슬립을 방지하는 것이다.



연구 핵심: 예측 기반 궤도 조절(Proactive Trajectory Modulation)

연구진은 Franka Emika 로봇 팔에 촉각 센서를 장착하고, 물체를 들어 이동시키는 작업 중 슬립을 예측하고 궤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TACTILE FORWARD MODEL'이라는 예측 시스템을 사용하여 미래의 촉각 데이터를 추정하고, 미끄러질 가능성이 있다면 경로를 살짝 바꿔 미끄러짐을 방지한다.

이 방식은 단순히 빠르게 반응하는 것을 넘어, 인간처럼 '예측적'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가속도나 방향을 조정하여 미끄러짐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연구 결과, 이 방식은 기존의 '그립 포스 제어(grip force control)'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특히 미끄러짐을 줄이는 비율(RTS)과 물체 회전 각도(MOR)에서 80% 이상 개선을 보였다.




기술적 분석: 왜 이 방식이 효과적인가?

이 연구에서 제안한 방식의 핵심은 로봇이 매 순간 '이대로 가면 물체가 미끄러질까?'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경로를 조절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끄러질 것으로 예측되면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살짝 바꾸어 이를 방지한다. 이는 단순히 힘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접근이다.

또한 궤도는 6자유도(6 DoF)를 기준으로 조절되며, 속도와 방향을 각각 분리해 다루기 위해 구면 좌표계(spherical coordinates)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미세한 움직임의 조절이 가능해졌고, 다양한 물체와 상황에 대해 높은 범용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실생활 적용 가능성: 로봇의 섬세함을 끌어올리다

이 연구는 단순히 실험실에서만 유용한 기술이 아니다. 로봇이 일상에서 섬세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려면, 힘으로만 제어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이 기술이 유용할 수 있다:

  • 의료 로봇이 유리병을 옮길 때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 창고 자동화 로봇이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제품을 다룰 때
  • 서비스 로봇이 사람에게 음료를 서빙할 때

흥미롭게도 이러한 예측 기반 궤도 조절 방식은 최근 AI 기반 자율주행 차량의 경로 최적화 방식과도 유사하다. '미리 위험을 예측하고 궤도를 조정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비판적 시각: 앞으로의 과제와 한계

물론 이 연구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우선, 현재 시스템은 오프라인에서 학습된 모델을 사용하고 있어 완전한 실시간 학습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실험에 사용된 물체는 상자 형태로 제한되어 있으며, 더 복잡한 형태의 물체나 환경에 적용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예측 모델의 정확도에 따라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예측이 틀리면 오히려 잘못된 궤도 조절로 인해 작업이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온라인 학습이 가능한 경량화된 모델이 향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수 있다.



결론: '힘'보다 '똑똑한 움직임'이 로봇의 미래다

이 연구는 로봇이 물체를 안정적으로 다루기 위해 반드시 손의 힘을 세게 할 필요는 없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측적 사고'와 '경로 조절'이다. 인간이 그렇게 하듯이, 로봇도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이 기술이 상용 로봇 시스템에 탑재된다면, 로봇은 더 이상 투박한 기계가 아니라 '섬세하고 유연한 도우미'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체를 미끄러뜨리지 않는 똑똑한 로봇의 시대가, 그렇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출처논문

Nazari, K., Mandil, W., Santello, M., Park, S., & Ghalamzan-E, A. (2025). Bioinspired trajectory modulation for effective slip control in robot manipulation. Nature Machine Intelligence, 7(7), 1119–1128. https://doi.org/10.1038/s42256-025-01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