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 이제 손으로 만진다?


“소리 없는 비명”이라 불리는 뭉크의 <절규>. 이 그림 앞에 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거다.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리감. 유리 벽 너머로 비치는 희미한 붓질. 만질 수도, 가까이 들여다볼 수도 없는 명작 앞에서 관람객은 늘 한 발짝 물러서야 했다.


그런데 이제 <절규>를 손끝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 상상이 현실이 됐다. 그리스, 노르웨이, 이탈리아 연구팀은 <절규>의 색과 표면 질감을 ‘3D 프린트’로 재현해 누구나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촉각적 3D 프린팅 미디어와 회화의 색상 표면 특징 간의 상호작용. 《The Scream》의 사례(

Tactile 3D-printed media interaction with the color surface features of paintings. The case of the Scream (1910?))”


 가시광선(왼쪽)과 근적외선 850nm HSI(오른쪽) 이미지로 《절 규》(1910?)의 밑그림을 보여준다.



<박물관,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다>


명화는 왜 가까이서 볼 수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절규> 같은 작품은 종이 위에 물감과 오일을 얇게 덧칠해 만들어졌다. 빛, 습기, 손자국, 숨결 하나에도 물감이 바래고 종이가 상한다. 그래서 박물관은 유리벽과 경비원을 세워야 했다.


문제는 이 장벽이 시각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관람객,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벽이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설명문을 붙여도, 그림 앞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각적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시각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붓결과 재료감, 색의 층위는 그대로 봉인된다.


"Screaming Face"의 MA-XRF 원소 맵 상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연 K-라인 맵, 크롬 K-라인 맵, RGB 이미지, 카드뮴 L-라인 맵, 수은 L-라인 맵.



<3D 프린트가 열어준 감각의 문>


연구팀은 여기서 기술을 꺼냈다. 고해상도 디지털 현미경으로 <절규>의 표면을 정밀 스캔하고, 색을 층별로 분리해 3D로 쌓았다. 그리고 두 영역—울부짖는 얼굴과 불타는 듯한 하늘—을 선택해 3D 프린트로 만들어냈다.


이 프린트는 단순한 모형이 아니다. 붓질의 높낮이, 색의 순서를 그대로 복제했다. 손끝으로 만지면 어떤 색이 먼저 칠해지고 어떤 색이 덧입혀졌는지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뭉크의 손끝을 내 손끝으로 따라가는 셈이다.


문인과 뭉크가 물감을 칠한 방식과 노출된 판지 영역을 보여주는 물감층의 세부 사항.




<절규의 색이 사라지는 이유>


이 연구의 숨은 주제는 색의 변화다. <절규>는 세월과 빛, 습기 때문에 색이 계속 변해왔다. 초록빛 하늘, 붉은 얼굴, 노란빛 손잡이—모두 당시에는 지금과 조금씩 달랐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기존 연구와 달리 초고해상도 스캔 데이터를 활용했다. 그리고 색의 순서와 변화를 3D 프린트로 재현해 관람객이 직접 ‘색의 시간’을 더듬어보도록 했다.


HIROX의 고해상도 이미지 스캔 실험 설정


<누구나 만질 수 있는 명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복제품 전시가 아니다. 시각장애인도, 어린이도, 휠체어를 탄 관람객도 손끝으로 그림을 읽을 수 있다. 박물관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시도다.


연구팀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KHM 박물관과 InArt24 컨퍼런스에서 이 tactile 체험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실제로 3D 프린트를 만지고, 색의 높이를 따라가며 뭉크의 붓질을 느꼈다.


관람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림을 만지니까 그림이 내 것이 되는 기분이었다”, “색의 층을 손끝으로 느끼니 설명문보다 더 이해가 쉬웠다”—이런 후기가 쏟아졌다.

본 연구에서 조사된 페인팅의 두 영역. 오른쪽은 "하늘"로, 다른 하나는 "얼굴"로 지칭된다.


<‘보지 않고’ 느끼는 새로운 전시>


사실 박물관은 오랫동안 ‘만지지 마시오’를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 ‘만져보세요’로 바뀌는 중이다. 3D 프린트, VR, AR, 촉각 오디오가 결합된 새로운 전시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절규> 프로젝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연구팀은 단순한 복제에 그치지 않고 색채 분석, 보존과학 데이터까지 얹었다. 관람객은 단순히 만지는 것을 넘어 색의 변화, 재료의 역사까지 체험할 수 있다.

뭉크의 1910년작 <절규> 그림의 "얼굴 영역(왼쪽)에 대한 RGB 색상 클러스터링 및 그레이스케일 매핑(오른쪽) 결과다.



<명화는 계속 살아남을까>


<절규>는 이미 색이 바래고 있다. 일부 황색은 빛에 약해 색이 사라지고, 붉은 색조는 어두워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3D 프린트를 통해 이런 과학적 사실도 ‘만져서’ 이해하게 만든다.


그림을 지키면서도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 그 해답이 기술에 있다면, 앞으로 더 많은 박물관이 이 실험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3D 프린팅된 "얼굴" 영역의 3D 지형 모델


<“만져서 보는” 예술, 새로운 문화로>


‘눈으로만 보는 미술관’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눈과 손, 귀까지 동원해 하나의 작품을 경험한다.

<절규>는 이제 ‘소리 없는 비명’이 아니라 ‘손끝에서 울리는 비명’이 됐다. 그리고 그 울림은 더 많은 이들을 박물관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출처 논문:

Stavroulakis PI, Pagano A, Boracchi B, Siozos P, Sotiropoulou S, Leonhardt E, Sabatier V, Trumpy G and Sandu ICA (2025) Tactile 3D-printed media interaction with the color surface features of paintings. The case of the Scream (1910?) painting. Front. Comput. Sci.7:1597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