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VR 헤드셋, 뇌 반응 속도도 재나?



눈앞에 떠 있는 빨간 사각형. 보자마자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 간단한 반응 속도(Simple Reaction Time, SRT) 측정은 뇌 기능을 살펴보는 기본 도구다. 그런데 이 기본 도구가 VR(가상현실)과 만나면 어떨까?

대만 국립대학 병원 연구팀은 VR 기반 SRT 측정 시스템을 만들어 실제로 쓸 만한지, 다시 말해 신뢰성과 정확성이 충분한지 직접 실험했다. 지금까지 반응 속도는 대부분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를 사용해 측정해왔다. 하지만 VR은 시각 환경을 더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고, 몰입감도 높아 더 정밀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게 연구진의 아이디어였다.



VR에서 버튼 누르면 더 느릴까?

연구진은 20세 이상 건강한 성인 30명을 모집해 VR과 PC 기반 SRT 테스트를 모두 해봤다. 참가자들은 HTC Vive ProEye VR 기기를 쓰고, 가상 화면에 나타나는 빨간 사각형을 보면 곧바로 키보드를 눌렀다. 같은 조건으로 PC 모니터에서도 같은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VR 환경에서 반응 속도가 평균 9~10ms 정도 더 길었다. 간단히 말하면 현실 모니터보다 VR 속에서 버튼을 누르는 게 살짝 더 느린 셈이다. 하지만 두 방식의 결과는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r=0.85~0.89)를 보였다. 즉, VR에서도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뜻이다.



실험 참가자, 멀미는 없었다

VR 하면 떠오르는 게 멀미(사이버 시크니스)다. 이번 실험에서는 다행히 어지럼증이나 두통을 호소한 참가자는 없었다. 연구진은 실험 전후로 참가자에게 자발적으로 증상을 물었고, 100번의 반복 측정 동안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몇 번이나 테스트를 반복해야 가장 정확할까?였다. 실험 결과 25번만 해도 어느 정도 신뢰성은 있었지만, 50번 이상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다만 100번 가까이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 반응 속도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뇌 반응 속도 검사, 이제 VR로?

사실 지금까지 반응 속도 검사는 컴퓨터나 자로 떨어뜨려 잡는 간이 테스트가 주류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조명, 모니터 성능, 눈과 화면의 거리 등 주변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쉽다. 반면 VR은 머리 움직임과 시선까지 추적하며 시각 환경을 표준화할 수 있다.

연구팀은 “VR은 반응 속도뿐 아니라 공간 인지, 시각적 주의력 평가까지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인지 장애 환자 평가에 VR 기반 반응 속도 검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기대다.



현실보다 느린 이유는 뭘까?

그런데 왜 VR에서는 살짝 느릴까? 연구팀은 가상 자극이 실제 자극보다 인지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VR 기기를 쓰면 머리 움직임, 시각 자극 처리 방식 등이 현실과 달라 미세한 차이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일관성이다. 동일한 환경에서 여러 번 측정해도 결과가 일정하다면, 임상 도구로 충분히 쓸 수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선택 반응 속도(Choice RT)나 시야 특화 반응 속도(Visual Field Specific RT)로 연구를 넓힐 계획이다.



출처 논문
Chen Y-C, Liang H-W (2025). Application of a virtual reality-based measurement of simple reaction time in adults: a psychometric evaluation. Virtual Reality 29:108. https://doi.org/10.1007/s10055-025-01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