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안경 쓰고 영어 공부? 성적이 진짜 올랐다
— 제노바대 연구팀, 가상현실로 문법·어휘 학습 효과 검증
온라인 강의, 특히 무크(MOOC)가 이미 전 세계 학습 풍경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화면 앞에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실제 대화와는 동떨어진 학습 방식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노바대학교 연구팀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만약 우리가 가상현실(VR) 속에서 직접 물건을 집고, 움직이며 영어를 배운다면 어떨까?”
‘깊이’와 ‘몸의 움직임’을 더한 새로운 학습법
연구팀은 기존 온라인 영어 B1 수준 강의의 문법·어휘 활동을 VR 환경으로 변환했다. 핵심은 단순히 3D 그래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depth)와 신체 움직임(kinesthesia)을 활용해 학습하는 것이다. 이를 ‘확장 멀티미디어 원리(augmented multimedia principle)’라 부른다.
심리학자 리처드 마이어(Richard Mayer)의 인지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언어 채널(말·글)’과 ‘시각 채널(이미지)’을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 VR에서는 여기에 ‘운동감각 채널’이 추가된다. 즉, 단어가 적힌 가상 상자를 직접 집어 옮기며 문장을 완성하거나, 가상 물건에 이름표를 붙이는 과정에서 시각·언어·신체 감각이 동시에 작동해 학습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됐다
연구에는 제노바대 인문계열 학생 40명이 참여했다.
- VR 그룹: 25명, Meta Quest 2 헤드셋을 착용하고 6개의 VR 학습 활동 수행
- 스크린 그룹: 15명, 같은 내용을 MOOC 화면 기반으로 학습
활동 주제는 쇼핑이었다. 문법 활동에서는 신발가게 선반의 빈칸에 맞는 단어 상자를 직접 채워 넣었고, 어휘 활동에서는 옷·신발·액세서리 사진에 알맞은 이름표를 붙였다.
양쪽 모두 학습 후 시험을 봤지만, VR 그룹은 사전·사후 테스트도 진행해 변화를 측정했다.
결과: 점수도, 재미도, 몰입도도 ‘상승’
통계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 문법: VR 그룹 사전 평균 12점 → 사후 14점 (20점 만점)
- 어휘: 사전 2점 → 사후 4점
- 최종 비교: VR 그룹 평균 17.68점, 스크린 그룹 13.72점 (p=0.006, 유의미 차이)
뿐만 아니라, VR 그룹은 학습 경험에 대해 ‘유용하다’, ‘재미있다’, **‘편안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유용성’과 ‘재미’는 학습효과 인식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r>0.8). 연구팀은 이를 “물건을 직접 잡고 옮기는 물리적 상호작용(physical affordance)이 몰입과 효용성을 동시에 높였다”고 해석했다.
왜 효과가 있었을까?
기존 언어교육 방식인 CLT(의사소통 중심 교수법)나 TBLT(과업 중심 학습법)는 의미 전달과 실제 과업 수행에 집중한다. 이번 연구의 VR 방식은 여기에 공간 인지(spatial cognition)와 신체 감각(sensorimotor processing)을 더한 것이다. 뇌는 단어를 단순히 글로 외우는 대신, ‘그 단어를 붙였던 물체의 위치와 느낌’을 함께 저장하기 때문에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한계와 과제
연구팀은 이번 실험이 단기 성과만 측정했다는 점, 표본이 적고 특정 전공 학생에 한정됐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향후에는 장기 기억 효과와 다양한 학습자 집단을 대상으로 실험이 필요하다. 또, 깊이와 움직임 요소를 각각 분리해 어떤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주는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MOOC와 VR의 만남, 앞으로는?
이번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는, 개발에 무료 소프트웨어(Unreal Engine 4)와 상용 보급형 VR 기기를 사용해 비교적 저비용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활동은 짧고 모듈화되어 있어 기존 MOOC에 쉽게 삽입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VR 활동이 기존 VR 대화 시뮬레이션과 함께 쓰이면, 문법·어휘·회화까지 종합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온라인 학습이 더는 ‘모니터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대가 아니라, 가상 속에서 손발을 쓰며 배우는 몰입형 학습 시대로 가고 있다는 신호다.
출처
Vallarino, M., Cersosimo, R., Torre, I., & Vercelli, G. (2025). Effects of using depth and motion in virtual reality to enhance language learning. Virtual Reality, 29(127). https://doi.org/10.1007/s10055-025-01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