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먹는 터빈, 균열을 감지하는 AI
풍력 터빈 블레이드에 생긴 균열을 AI가 감지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러스트: 진동 파형(왼쪽)과 신경망 구조(오른쪽)는 각각 데이터 수집과 AI 분석 과정을 의미하며, 균열 난 블레이드는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
“쨍” 소리 없이 망가진다?
깨진 유리처럼, 바람개비도 ‘금이 간다’. 멀쩡해 보이던 풍력 발전기 날개에 생긴 실금이, 어느 날 갑자기 시스템 전체를 멈춰 세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멕시코의 한 연구팀이 흥미로운 해답을 내놨다. 날개에 난 작은 균열을 소리도 없이 감지하는, 똑똑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든 것. 귀로 들리지 않고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미세한 이상 신호’를 진동으로 읽어내, 날개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AI 모델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고장이 나기 전에 미리 수리할 수 있어 풍력 발전소의 유지보수 비용은 뚝 떨어질 것이다. 단순히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걸 넘어서, 바람을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균열
전 세계 전기 생산의 약 8%를 책임지고 있는 풍력. 그러나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거대한 풍력 터빈은, 생각보다 자주 고장 난다. 특히 블레이드(날개)는 전체 고장 중 약 20%를 차지할 만큼 취약한 부위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람, 비, 눈, 먼지, 새 충돌, 온도 변화… 자연의 모든 공격을 온몸으로 받는 게 바로 날개이기 때문. 여기에 한 번이라도 금이 가면, 이 작은 실금이 시간이 지날수록 쩍쩍 벌어지며 결국에는 대형 사고로 번진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거나,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을 AI가 분석하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하지만 이 방식은 눈에 띌 정도로 금이 커졌을 때만 효과가 있다. 균열이 작으면? 그냥 지나친다. 결과적으로 ‘이미 늦은’ 고장이 많았다.
귀로는 못 듣는 진동, AI는 잡아낸다
이번 연구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핵심은 “진동”. 날개가 회전할 때 생기는 진동을 감지하면, 균열이 생겼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장벽이 나타난다. 진동 신호는 워낙 복잡하고 잡음도 많다. 사람 눈으로 봐서는 이상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두 단계로 풀었다.
- 진동 신호를 ‘그림’으로 바꾼다
우선, EMD(경험적 모드 분해)라는 기법으로 진동 데이터를 여러 주파수 성분(IMF)으로 쪼갠 뒤,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다. 말하자면, 날개의 상태를 보여주는 ‘진동 지도’를 그리는 셈이다. - 그림을 AI가 읽는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를 CNN(합성곱 신경망)에 넣는다. CNN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분하는 데 쓰이던 이미지 분석용 AI다. 여기선 ‘건강한 날개’와 ‘균열 난 날개’를 구분해주는 똑똑한 판독기로 사용됐다.
놀랍게도, 이 AI는 날개의 상태를 무려 99.5% 정확도로 맞췄다. 그것도 날개의 회전 속도(3rps~12rps)가 바뀌어도, 아주 작은 균열(1cm)만 있어도 잡아냈다.
"복잡한 AI 말고, 간단한 AI로도 충분했다"
이 연구의 또 다른 미덕은 효율성이다. 성능 좋은 AI는 많지만, 문제는 ‘너무 무거워서’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실험을 반복하며 CNN의 복잡도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결국엔 단 1개의 합성곱 층과 8개의 필터만 사용한 초간단 AI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저사양 장치나 마이크로컨트롤러에도 탑재할 수 있다.
즉, 값비싼 서버 없이도 실시간으로 풍력 발전기 날개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드론 띄우지 않아도, 사람 보내지 않아도, 터빈이 돌아가는 중에도.
바람의 미래, AI가 지킨다
지금까지 풍력 발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날개 균열’. 이번 연구는 이를 눈에 띄기 전에 감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진동 데이터와 AI의 만남은 “보이지 않는 문제를 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남아 있다. 연구는 소형 터빈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균열의 모양과 위치에 따른 영향은 분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진은 더 큰 터빈, 더 다양한 환경, 더 복잡한 고장 유형에 대해서도 기술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풍력은 더 신뢰할 수 있고, 더 경제적인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바람이 전기로 바뀌는 그 순간까지, AI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출처
Rangel-Rodriguez, A.H., Machorro-Lopez, J.M., Granados-Lieberman, D., de Santiago-Perez, J.J., Amezquita-Sanchez, J.P., & Valtierra-Rodriguez, M. (2025). Detection of Cracks in Low-Power Wind Turbines Using Vibration Signal Analysis with Empirical Mode Decomposition and Convolutional Neural Networks. AI, 6(179). D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