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가난을 줄이려면, 먼저 ‘돈의 흐름’부터 바꿔야 한다
이 질문에 스페인~영국~캐나다~영국을 넘나들며 연구하는 학자 이고르 칼사다는 이렇게 답했다.
“가능하다. 하지만 그냥 기술만 깔아서는 안 되고, AI가 만드는 돈과 권력이 누구에게 넘어가는지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가 막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이렇다.
‘Decentralizing AI Economics for Poverty Alleviation: Web3 Social Innovation Systems in the Global South’
직역하면, “AI 경제를 분산시켜 가난을 줄이자: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웹3 사회혁신 시스템” 정도다.
이 논문이 다루는 핵심은 단순하다.
AI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AI가 만들어내는 부와 데이터, 권력이 “어떤 경제 시스템”을 통해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는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 등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다.
AI를 ‘기술’이 아닌 ‘경제 시스템’으로 바라보다
칼사다는 먼저 새로운 개념 하나를 제시한다. ‘AI 경제학(AI Economics)’이다.
보통 디지털 경제라고 하면 플랫폼, 앱, 네트워크 효과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지만, AI 경제학은 질문이 조금 다르다.
- AI 모델이 돌아가면서 누가 데이터를 모으고,
- 그 데이터로 만든 서비스에서 누가 이익을 가져가고,
-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노동과 시간은 어떻게 가치가 매겨지는지,
- 그리고 최종적으로 돈과 권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살펴보는 시각이다.
글로벌 노스(북반구 부유국)에서는 AI가 이미 행정, 교통, 보건, 금융에서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인터넷 인프라도 충분치 않고, 디지털 교육도 부족하고, 법과 제도도 AI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사다가 던지는 더 날카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정말 가난을 줄이는 도구가 될까,
아니면 데이터와 이익만 북쪽 대기업으로 빨아들이는 새로운 ‘디지털 식민지’가 될까?”
이 물음 위에서 논문은 세 가지 키워드를 엮는다.
- AI4SI: ‘AI for Social Innovation/Impact’ – AI를 사회문제 해결에 쓰자는 프레임
- 웹3(Web3): 블록체인·DAO·데이터 협동조합을 통한 분산 기술
- 글로벌 사우스의 빈곤: AI를 어떻게 설계해야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질문
결국 이 논문이 말하는 핵심은 “AI를 깔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의 AI 경제를 만들 것인가”다.
한눈에 보는 연구 구조: 문헌·정책·현장실험을 묶다
논문 5쪽의 그림에는 이 연구의 흐름이 도식으로 정리돼 있다. 위에서 아래로 화살표가 내려오며 다섯 단계가 이어진다.
- 문헌 검토: AI, 사회혁신, 데이터 식민주의, 블록체인, DAO, 데이터 협동조합 논의 정리
- 정책 분석: 세계경제포럼(WEF)의 AI4SI·PRISM 프레임 분석
- 액션리서치: 스페인 AI4SI 국제 써머스쿨에서의 현장 실험
- 비교 분석: 중앙집중형 vs 분산형 생태계
- 논의·결론: 두 생태계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모델 제안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세 번째 단계다. 이 논문은 실제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2024년 9월, 15개국에서 모인 250여 명이 참여한 써머스쿨에서 “디지털 정의와 분산 기술이 빈곤을 줄일 수 있는가”를 주제로 워크숍과 토론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AI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디지털 불평등, 블록체인과 DAO가 실제로 삶을 바꿀 수 있을지 등을 활발히 논의했다.
두 개의 생태계, 두 개의 미래
1. AI4SI ‘기존 중앙집중형 생태계’
대표 사례:
- DIMAGI: 저소득 국가 보건 상담 AI
- LifeBank: AI로 혈액 공급 최적화
- Geekie: 브라질 AI 학습 플랫폼
- Agrimetrics: 농업 데이터 기반 분석
장점은 빠른 확산성과 실용성이다. 하지만 대부분 데이터와 제어권이 기업·기관에 집중돼 있다. 사용자는 ‘서비스 이용자’일 뿐, 데이터와 이익 배분에서는 거의 배제된다.
이 구조는 결국 “디지털 식민주의”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2. 웹3 기반 ‘분산형 사회혁신 생태계’
대표 사례:
- Fishcoin: 어업 공급망 추적 + 데이터 보상
- Grassroots Economics: 커뮤니티 화폐 + DAO 운영
- Commons Stack / Gitcoin: 공익 프로젝트 DAO 자금 배분
- Giveth: 블록체인 기반 기부금 투명화
이 생태계는 데이터 주권과 참여적 거버넌스를 중심에 둔다.
즉, 지역 주민이 ‘사용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연다.
다만 기술 난이도가 높고, 실제 제도적 기반이 부족해 아직 실험적 단계라는 한계가 있다.
액션리서치: 현장에서 드러난 기대와 불안
AI4SI 써머스쿨에서는 다음 같은 논점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 디지털 정의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제 권리의 문제
- 분산화가 항상 ‘선’은 아님 — 기술 엘리트가 새로 등장할 위험
- 교육·인프라 없이 어떤 모델도 작동하지 않음
결국 기술 자체보다 “현장이 준비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AI는 정말 가난을 줄일 수 있을까?
논문은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까지는 ‘AI가 빈곤을 확실히 줄였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
대신 4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 AI 경제학 관점에서 설계를 다시 하라 – 데이터·이익·권력의 흐름을 명확히
- 중앙집중형 + 분산형의 하이브리드를 만들라
- 정책 프레임에 분산화 요소를 추가하라
- 지역사회가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가 되게 하라
즉, AI의 잠재력이 실현될지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문제다.
블로그 독자를 위한 한줄 정리
AI는 이미 세계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가난한 지역을 돕는 방향으로 갈지, 새로운 디지털 식민주의를 만들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 갈림길은 기술이 아니라, “어떤 AI 경제 구조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이 만드는 AI에서, 데이터와 이익, 권력은 결국 누구의 손에 남는가?”
출처
Calzada, I. (2025). Decentralizing AI economics for poverty alleviation: Web3 social innovation systems in the Global South. AI, 6(12), 309. https://doi.org/10.3390/ai612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