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이 대신 민원 넣어주는 시대, 모두에게 공정할까?

 



요즘 주민센터에 가는 대신, 휴대폰으로 몇 번만 눌러서 민원을 처리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여기에 “생성형 AI 챗봇이 전자정부를 도와준다”는 말까지 붙으면, 왠지 세상이 훨씬 편해질 것 같다.


하지만 한 번 상상해보자.


어떤 사람은 AI 챗봇에게 “이 서류 어떻게 내나요?”라고 물어보고 순식간에 신청을 끝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여전히 종이 서류를 들고 구청 창구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서 있다.


같은 나라 국민인데, 디지털 행정의 문 앞에서부터 이미 갈리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세르비아를 사례로, 생성형 AI가 전자정부 안에서 디지털 격차를 줄일지, 오히려 벌려놓을지 분석한 연구다.


인터넷은 다들 되는데, 정작 전자정부는 잘 안 쓴다

연구진은 먼저 “전자정부의 디지털 격차”를 세 가지 층으로 나눴다. 이름은 조금 어려워 보여도, 내용은 surprisingly 직관적이다.

  1. D1: 기본 디지털 격차
    • 인터넷 되는지, 스마트폰·컴퓨터는 있는지
    • 기본적인 디지털 기술(파일 옮기기, 프로그램 설치 등)이 되는지
    • 디지털 교육이나 도움을 받을 곳이 있는지
  2. D2: 전자정부 격차
    • 실제로 온라인으로 정부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 전자서명·공동인증서 같은 eID를 쓸 줄 아는지
    • “복잡해 보여서…”, “굳이 필요 없어서…” 같은 이유로 안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3. D3: 생성형 AI 격차(탐색 단계)
    •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쓸 수 있는지
    • 단순 질문뿐 아니라 다양한 업무에 활용하는지
    • AI가 내놓은 답을 검증하고, 개인정보·윤리 문제를 이해할 만큼의 ‘AI 리터러시’가 있는지

연구진은 이 세 층을 합쳐 전자정부 디지털 격차 측정 지표(EGDMI)라는 지표를 만들었다. 이름은 딱딱하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접속이 되느냐”에서 끝내지 않고 “정말로 잘 쓰고 있느냐, 그리고 AI 시대엔 거기서 또 누가 떨어져 나가느냐”까지 한 번에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숫자로 본 현실: ‘기본 준비는 OK, 전자정부는 탈락 수준’

세르비아 데이터를 보면, 상황은 이렇게 요약된다.

  • D1(기본 디지털 격차): 73.6점
    • 인터넷 접근성 점수는 85.6점
    • 스마트폰·노트북 보급도 높다
    • 즉, “인터넷이 안 돼서, 기기가 없어서” 못 쓰는 사람은 예전보다 정말 줄었다.
  • 하지만, 디지털 교육·지원 점수(D14)는 10.7점밖에 안 된다.
    • 인터넷은 되지만, 옆에서 알려줄 사람·공공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 D2(전자정부 격차): 19.9점
    • 전체적으로 보면 전자정부 서비스 이용 비율은 겨우 30%대 초반 수준
    • eID 같은 전자 신원확인 수단을 쓰는 사람도 30%가 안 된다.
    • 게다가 온라인 서비스를 안 쓰는 사람에게 이유를 묻자,
      “필요를 못 느껴서”, “복잡해 보이고 믿음이 안 가서” 같은 ‘주관적 비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 “인터넷 안 되는 사람 많아서 전자정부 못 쓴다”는 말은 이제 과거형에 가깝다.
  • 대신 “있어도 안 쓴다, 쓰기 싫다, 무섭다”가 새로운 디지털 격차의 얼굴로 떠올랐다.

연구진은 이것을 “접속의 격차에서, 의미 있는 이용의 격차로의 이동”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 전환이 단순히 “망 깔고 기기 나눠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생성형 AI, 디지털 문턱을 낮출까? 아니면 더 높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생성형 AI(GenAI)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두 얼굴을 가진 존재로 본다.

  1. 문턱을 낮추는 얼굴
    • 어렵게 느껴지는 전자정부 사이트 대신,
      “출산 지원금 신청하려면 뭐부터 해야 해?” 하고 말로 묻는다.
    • AI가 단계별로 안내하고,
      복잡한 법률 문서를 쉬운 말로 풀어주며,
      다른 언어로 번역해주고,
      시각장애인·고령자에게는 음성으로 읽어줄 수도 있다.
    • 이 경우, AI는 ‘디지털 행정 도우미’ 역할을 한다.
  2. 문턱을 더 올리는 얼굴
    • 하지만 AI를 제대로 쓰려면
      •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프롬프트 능력)
      • AI 답을 어느 정도는 의심하고 다시 확인할지(검증 능력)
      •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주면 안 되는지(윤리·보안 감각)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 이 능력이 부족하면, 잘못된 안내를 그대로 믿고 신청을 잘못하거나,
      민감한 정보를 AI에게 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연구진은 D3(생성형 AI 격차)를 “탐색적 차원”으로 따로 떼어 분석했다.

  • GenAI 접근성 점수: 47.8점
  • 실제 과제에 활용하는 정도: 39.4점
  • AI 결과를 검증하고 윤리·위험을 인지하는 능력: 약 43.6점

수치만 보면, “일단 써보는 사람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깊이 있고 안전하게 쓰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정도로 볼 수 있다.


연구진의 핵심 결론은 이렇다.


“생성형 AI는 단기적으로는 격차를 더 벌릴 위험이 있다.”


디지털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AI를 등에 업고 전자정부를 훨씬 잘 쓰게 되지만,
불안하고 낯설어하는 사람은 AI까지 낀 새로운 행정환경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부류의 시민: 누구는 AI와 함께 달리고, 누구는 여전히 문 앞에서 맴돈다

연구진은 사람들을 디지털·전자정부·AI 활용 수준에 따라 네 가지 그룹으로 나눴다.

  1. C1: 디지털 배제층(18%)
    • 인터넷·기기 접근도 낮고
    • 전자정부도, 생성형 AI도 거의 안 쓰는 사람들
    • 말 그대로 ‘디지털 행정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가깝다.
  2. C2: 기본 디지털 이용자(37%)
    • 스마트폰·인터넷은 잘 쓰지만
    • 전자정부 서비스는 거의 안 쓰고, 생성형 AI도 거의 모른다.
    • 유튜브·메신저·쇼핑은 해도,
      “정부 사이트는 건드리기 싫다” 쪽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3. C3: 전자정부 실용 이용자(28%)
    • 공인인증·eID도 쓰고, 전자정부 서비스를 꽤 이용한다.
    • 생성형 AI는 필요할 때 조금씩 써보는 정도.
    • 실용적이고 조심스러운 타입이라 볼 수 있다.
  4. C4: 생성형 AI로 강화된 시민(17%)
    • 디지털 활용도, 전자정부 이용도 모두 높고
    • 생성형 AI까지 능숙하게 써서 정보 검색, 서류 이해, 번역, 문서 작성 등을 돕게 한다.
    • ‘전자정부 + AI’ 시대의 최상위 수혜자에 가까운 층이다.

이 네 그룹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누구는 AI와 함께 디지털 행정 고속도로를 달리고, 누구는 여전히 비포장도로에 서 있다.”


연구진이 제안한 해법: “먼저 사람, 나중에 자동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진은 “AI로 전자정부를 ‘자동화’하기 전에, 사람부터 챙기자”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다.

핵심은 세 가지다.

  1. 인프라 말고 ‘사람 중심’으로
    • 이제는 “광케이블 더 깐다, 와이파이 존 늘린다”보다
      전자정부 사이트 자체를 쉽게, 친절하게,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 복잡한 서류 절차를 줄이고,
      “아이 출생 신고”, “창업”, “퇴직·연금 신청”처럼
      사람이 겪는 ‘삶의 사건’ 중심으로 서비스 묶음을 재설계하자는 제안이다.
  2. 생성형 AI 도입은 ‘문지기’가 아니라 ‘도우미’로
    • 챗봇을 기존 창구의 ‘대체재’가 아니라,
      “원하면 쓸 수 있는 옵션”으로 두라고 권한다.
    • 특히 디지털 약자에게는
      AI 없이도 신청·문의가 가능한 경로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3. “AI 리터러시 먼저, 자동화는 그다음”
    • 학교·평생교육·공공 프로그램에서
      • AI가 틀릴 수 있다는 점
      • 결과를 어떻게 검증할지
      • 개인정보와 윤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를 가르치는 생성형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구진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이런 느낌이다.


“생성형 AI는 포용을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서둘러 도입하면 새로운 불평등 축을 만들 수 있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우리 전자정부는 정말 ‘모두의 것’인가

이 연구는 세르비아를 대상으로 했지만, 사실 읽다 보면 한국 이야기처럼 들리는 대목이 많다.

  •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상위
  • 공공 앱과 온라인 서비스는 이미 매우 많다
  • 그런데도 여전히
    • 부모님은 구청·동사무소 가는 걸 더 편해하고
    • 청년층도 “정부 사이트는 어렵고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기술은 앞서가는데,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이제 생성형 AI가 더해진다.

  • 누군가는 AI 덕분에 세금·복지·행정 절차가 훨씬 쉽고 빠워질 것이다.
  • 또 누군가는 “AI까지 나왔으니, 이제 더더욱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날카롭다.


“전자정부와 생성형 AI를 이야기할 때, ‘할 줄 아는 사람’만 기준으로 삼지 말자.”


디지털 행정은, 기술을 가장 잘 쓰는 20%가 아니라 마지막 20%까지 도달해야 진짜 완성이기 때문이다.



출처 

Radojičić, S., & Vukmirović, D. (2025). Exploring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digital inclusion: A case study of the e-government divideAI, 6(12), 303. https://doi.org/10.3390/ai61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