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위기 속 인간을 얼마나 사람답게 흉내 낼 수 있을까? 분유 대란 실험이 밝혀낸 ‘행동 이론 AI’의 놀라운 차이
분유가 사라진 도시에서, AI는 사람처럼 고민할 수 있었을까?
2022년, 미국에서는 실제로 분유 대란*이 벌어졌다. 마트 진열대는 텅 비었고, 부모들은 밤새 차를 몰아 여러 매장을 돌았다. 누군가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누군가는 푸드뱅크 문을 두드렸다. 이 혼란 속에서 정책 담당자들이 가장 궁금해한 질문이 있었다.
“만약 이런 위기를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등장한 것이 디지털 트윈과 AI 에이전트다. 도시와 사람을 가상 세계에 그대로 복제하고, 그 안에서 AI가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문제는 하나였다.
AI의 행동이 정말 사람 같을까?
미국의 연구진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실험 무대는 ‘분유가 부족한 달라스 남부 지역’이었다.
규칙만 따르는 AI와, 사람의 마음을 배운 AI의 대결
연구진은 똑같은 가상 도시, 똑같은 분유 부족 상황을 만들어 놓고 두 종류의 AI를 투입했다.
첫 번째 AI는 규칙형 AI였다.
“분유가 부족하면 가게에 간다. 없으면 다음 가게로 간다.”
교통수단, 시간,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정해진 규칙을 차근차근 실행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AI는 달랐다. 이 AI는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세 가지 행동 이론을 배웠다.
- 위험을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는지
-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지
-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 AI는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급한가?”, “차가 없는데 먼 곳까지 갈 수 있을까?”, “이웃이 도움을 받았다면 나도 도움을 청해볼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쉽게 말해 사람의 고민 과정을 코드 안에 넣은 셈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누가 더 사람처럼 보일까?
사람의 눈으로 평가했다, “이 행동은 진짜 같다”
연구진은 34명의 참가자에게 두 AI의 행동 기록을 보여줬다. 참가자들은 전문가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일반 사람이 봤을 때 얼마나 그럴듯한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평가는 네 가지 기준으로 이뤄졌다.
-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
- 상황 변화에 대한 적응
- 행동의 현실성
- 가족·이웃 같은 사회적 도움 활용
결과는 놀라울 만큼 명확했다.
행동 이론을 배운 AI가 모든 항목에서 더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차이가 크게 난 부분은 적응력과 사회적 도움 활용이었다.
규칙형 AI는 분유가 없는 가게를 여러 번 반복 방문하는 어색한 행동을 보였다. 반면 행동 이론 AI는 “이 방법은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전략을 바꿨다. 가게 대신 지인에게 연락하거나, 푸드뱅크를 찾았다. 실제 부모들이 했던 행동과 매우 비슷했다.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하다.
행동 이론 AI의 평균 현실성 점수는 5점 만점에 약 4점. 규칙형 AI는 그보다 훨씬 낮았다.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왜 ‘사람의 마음’을 넣으니 AI가 달라지는 것일까?
이 연구의 핵심은 단순하다.
사람은 규칙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불안해하고, 주변을 살피고, 실패하면 전략을 바꾼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행동 이론 AI는 이런 요소를 모두 고려했다.
- 분유가 떨어질수록 불안이 커지고
- 교통이 불편하면 선택지가 줄어들고
- 다른 사람이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면 나도 시도해본다
이런 흐름이 쌓이자, AI의 행동은 더 이상 기계 같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실제 부모가 이럴 것 같다”고 느꼈다.
이 연구가 중요한 진짜 이유
이 연구는 단순히 “AI가 더 똑똑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메시지는 여기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AI를 믿어도 되는가?
재난 대응, 보건 정책, 식량 공급 같은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만약 AI가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 시뮬레이션은 오히려 위험하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 원리를 반영한 AI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책 담당자는 AI의 선택을 보고 “아,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겠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해가 더 나은 결정을 만든다.
이 연구는 말한다.
AI에게 규칙만 가르치지 말고, 사람을 가르쳐라.
그래야 위기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앞으로의 세상, AI는 ‘사람다움’을 배운다
분유 대란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앞으로는 감염병, 자연재해, 경제 위기 같은 더 복잡한 상황들이 AI 시뮬레이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계산 속도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번 연구는 그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AI가 사람처럼 행동하려면, 먼저 사람을 설명하는 이론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출처
Desens, L., Walling, B., O’Neill, R., Howard, V., Giammarino, M., Scannell, D., Kemble, A., Wilkerson, T., Nhial, N., Elson, S. B., & Rosen, S. (2026). The realism of behavioral theory-based vs. non-theory-based AI agents during a simulated infant formula shortage. Frontiers in Artificial Intelligence, 9, 1719703. https://doi.org/10.3389/frai.2026.1719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