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은 정말 학습 효과를 높일까? 호텔경영 교육에서 드러난 의외의 결과
몰입감 높은 가상현실(VR)이 반드시 더 좋은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대학 강의실에서 진행된 연구는 전통적인 인쇄물 학습이 오히려 더 높은 시험 성과를 보였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최신 교육기술이 항상 최고의 학습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교육 현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VR 교육의 기대와 현실
가상현실(VR)은 교육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특히 관광·호텔경영 교육은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한 만큼 VR을 활용한 실습의 가치가 크게 기대되고 있다. 학생들은 가상의 레스토랑이나 호텔 공간에서 고객 응대, 테이블 세팅, 객실 관리 등을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으며, 실제 현장에 가지 않고도 다양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재미있게 배웠다"는 것과 실제로 "더 많이 배웠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VR이 높은 몰입감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몰입감이 곧바로 시험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슬로베니아 프리모르스카대학교 연구진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실제 대학 강의실에서 VR 학습과 전통적인 인쇄물 학습을 직접 비교하는 파일럿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는 실험실이 아닌 실제 수업 환경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교육 효과를 평가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실제 대학 강의실에서 진행된 비교 연구
연구에는 호텔·관광경영을 전공하는 학부생 28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동일한 학습 내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학습했다.
VR 그룹은 Meta Quest 3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의 레스토랑 공간을 탐색하면서 식기와 레스토랑 비품을 직접 살펴보고 물체를 선택하며 설명을 확인했다. 또한 VR 안에서 간단한 퀴즈를 수행하며 학습을 진행했다.
반면 전통 학습 그룹은 동일한 내용을 종이 교재를 이용해 학습했다. 학습 전후에는 동일한 12문항의 객관식 시험을 실시하여 지식 습득 정도를 비교했다. 시험은 레스토랑 비품의 명칭이나 용도를 기억하고 식별하는 선언적 지식을 평가하도록 설계되었다.
학습은 모두 효과가 있었다
연구 결과 두 그룹 모두 학습 후 시험 성적이 향상되었다. 전체 학생의 평균 점수는 학습 전 34.5%에서 학습 후 63.1%로 크게 상승했다. 이는 VR이든 전통적인 학습이든 학생들이 새로운 내용을 충분히 익혔음을 의미한다.
연구진 역시 학습 전후 점수 차이가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하다고 분석했다. 즉, 학습 활동 자체는 분명한 교육 효과를 보였다.
예상과 달리 전통적인 학습이 더 높은 성과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성적 향상의 크기였다. VR을 활용한 학생들도 성적이 올랐지만, 인쇄물을 이용해 학습한 학생들의 점수 상승폭이 더욱 컸다.
VR 그룹의 평균 점수는 4.08점에서 6.23점으로 증가한 반면, 전통 학습 그룹은 4.20점에서 8.73점으로 상승했다. 통계 분석에서도 두 집단의 향상 정도는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결국 이번 연구에서는 VR이 전통적인 학습보다 더 우수한 시험 성과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왜 VR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을까?
연구진은 첫 번째 이유로 평가 방식 자체를 제시했다. 이번 시험은 레스토랑 비품의 명칭과 기능을 기억하는 선언적 지식을 평가했다. 그러나 VR은 단순한 암기보다는 실제 행동을 수행하는 절차적 지식이나 공간 이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더 적합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진은 "VR은 절차적이고 경험 기반의 학습에는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 평가한 선언적 지식에서는 그 장점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인지부하(Cognitive Load)이다. VR 환경에서는 학습과 동시에 공간 이동, 화면 탐색, 물체 조작, 설명 읽기 등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추가적인 인지 활동은 단순히 내용을 암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학습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이번 연구에 사용된 VR 프로그램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였다. 상호작용 기능이 제한적이었고 학습자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기능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 역시 학습 효과를 제한했을 가능성이 있다.
학생들은 VR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시험 성적과 별개로 학생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학생들은 인터페이스가 사용하기 쉽고 실제 환경을 경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새로운 방식의 학습이라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특히 가상의 공간을 직접 둘러보며 학습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했다. 학생들은 상호작용 기능이 부족하고 이동이 다소 불편했으며 물체를 자유롭게 조작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실제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나 더욱 다양한 학습 시나리오가 추가되기를 희망했다.
VR은 실패한 기술이 아니다
이번 연구는 VR이 교육에 효과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목표를 위해 활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순한 암기와 지식 습득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종이 교재나 기존 강의가 여전히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고객 응대, 서비스 실습, 공간 이해, 문제 해결, 실제 업무 수행과 같은 절차적이고 경험 중심의 교육에서는 VR이 훨씬 큰 장점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진 역시 VR은 기존 교육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교수자의 지도 아래 전통적인 교육과 함께 활용될 때 가장 높은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글이 우리에게 주는 의의
교육 현장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교육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기술 그 자체보다 학습 목표와 교수 설계, 그리고 평가 방식이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VR은 분명 미래 교육의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모든 학습 상황에서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전통적인 교수법과 첨단 기술을 경쟁시키기보다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학습 목적에 맞는 적절한 교수 설계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출처
Kukanja, M., & Planinc, S. (2026). Virtual reality and declarative knowledge acquisition in hospitality management education: A classroom-based pilot study. Virtual Worlds, 5(3), 32. https://doi.org/10.3390/virtualworlds50300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