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공급망의 블록체인 혁신, EUDR 시대의 산림 추적성과 합법성

울창한 숲에서 벌채한 원목과 운송 트럭, 제재소가 푸른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목재 추적성 이미지
블록체인은 산림에서 제재소까지 이어지는 목재의 이동 기록을 연결해 EUDR이 요구하는 원산지 추적과 합법성 검증을 지원한다.


숲에서 베어 낸 나무가 가구와 건축자재, 종이로 바뀌어 소비자에게 도착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과 기업이 관여한다. 산림 소유자와 벌목업자, 운송회사, 제재소, 목재 가공업체, 수입업자와 유통업자가 하나의 긴 사슬로 연결된다. 문제는 이 사슬의 중간에서 목재의 출처와 이동 기록이 끊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합법적으로 벌채한 목재에 불법 목재가 섞일 수도 있고, 서류에 적힌 산지와 실제 벌목 장소가 다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기술로 블록체인이 주목받고 있다. 2026년 학술지 Blockchains에 발표된 연구는 블록체인이 목재 공급망의 투명성과 합법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특히 유럽연합 산림전용방지규정인 EUDR과 블록체인의 결합 가능성에 주목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블록체인은 목재 이력 관리에 유용하지만, 그 자체가 불법 벌목을 막아 주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었다.


불법 벌목과 산림 파괴를 막는 EUDR의 추적성 기준

EUDR은 산림 파괴와 관련된 상품이 유럽연합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목재를 비롯해 소, 코코아, 커피, 팜유, 고무, 대두와 관련 제품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사업자는 제품이 합법적으로 생산됐으며 산림 훼손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목재의 경우에는 원산지 국가만 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무를 벌채한 산림 구획의 위치정보와 생산 시기, 공급망 이동 과정, 거래 당사자와 관련 증거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가 제시한 시행 일정에 따르면 EUDR 의무는 대규모 사업자에게 2026년 12월 30일부터 적용되고, 영세·중소기업에는 2027년 6월 30일까지 연장된 일정이 적용된다.

이처럼 세밀한 실사 의무를 종이 문서와 이메일만으로 처리하기는 어렵다. 나무가 국경과 기업을 넘을 때마다 자료 형식이 달라지고, 일부 정보가 누락되거나 중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EUDR 시대의 핵심은 단순한 서류 보관이 아니라 목재의 실제 이동과 디지털 기록을 끊김 없이 연결하는 데 있다.


블록체인이 만드는 변조하기 어려운 목재 이력

블록체인은 여러 참여자가 공동으로 거래 기록을 저장하고 검증하는 분산형 장부 기술이다. 한 번 입력한 기록을 사후에 몰래 고치기 어렵고, 기록 변경 과정도 추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서로 다른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목재 공급망에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산림에서 나무를 벌채하는 순간 위치정보와 수종, 부피, 품질, 벌채 허가 정보를 등록할 수 있다. 원목이 운송차량에 실리고 제재소에 도착하면 새로운 이동 기록이 추가된다. 이후 목재가 가공되거나 여러 묶음으로 나뉘더라도 앞선 기록과 연결하면 출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블록체인의 진정한 장점은 정보를 많이 저장하는 데 있지 않다. 산림 소유자와 운송업자, 제재소, 인증기관, 감독기관이 동일한 거래 사건을 공동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업마다 별도의 장부를 관리하고 서로 다른 문서를 대조하던 과정을 줄이면 감사와 인증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산림·목재 업계 전문가 조사에서 드러난 현실

연구진은 문헌 조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를 중심으로 산림과 목재 산업 관계자의 경험을 수집했다. 전문가 심층 인터뷰에는 41명이 참여했고, 온라인 설문에서는 69명이 모든 문항에 응답했다. 이어 산림과 목재 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18명이 워크숍에 참여해 기술 도입 조건과 문제점을 논의했다.

조사 결과는 블록체인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블록체인이 분명한 운영상의 이점을 준다고 평가한 응답은 15건이었지만, 특별한 장점이 없다고 본 응답도 14건이었다. 기술의 이름보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응답자들은 디지털화가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그러나 산림 현장에는 여전히 종이와 수기 기록이 남아 있었고, 기업마다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데이터 형식도 달랐다. 블록체인을 도입하기 전에 정확한 디지털 자료를 생산하고 기업 간 시스템을 연결하는 기반부터 갖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목재 추적성의 필요성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온도 차이

설문 참여자들은 목재 공급망에서 추적성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평균 3.27점을 부여했다. 비공개 방식으로 목재 이동을 추적하는 시스템의 가치에는 평균 3.24점을 줬다. 반면 새로운 추적 방법에 대한 관심은 평균 2.76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 결과는 업계가 추적성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기술 도입에는 신중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새로움이 아니라 사용 편의성과 경제성이다. 작업자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거나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입력해야 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블록체인도 외면받을 수 있다.

현재 목재 추적에는 페인트 표시, 산림용 망치 각인, 바코드, 위치정보, RFID 태그와 각종 운송서류가 사용된다. 유전자 분석이나 목재의 표면 무늬를 이용하는 식별 기술도 존재하지만 실제 활용은 많지 않았다. 값이 저렴하고 익숙한 방법은 널리 쓰이지만, 개별 원목의 정체를 정밀하게 증명하는 기술은 아직 충분히 확산되지 않은 셈이다.

블록체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오라클 문제

블록체인의 가장 큰 한계는 입력된 자료가 진실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불법으로 벌채한 나무를 합법 목재라고 입력하면 블록체인은 그 거짓 정보를 매우 안전하게 보존한다. 틀린 자료가 들어가면 틀린 결과가 나오는 이 문제를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오라클 문제라고 부른다.

목재의 디지털 기록과 숲에 놓인 실제 원목 사이의 연결이 끊기면 블록체인 장부의 신뢰성도 무너진다. 표시가 바뀌거나 원목이 다른 묶음에 섞이는 순간 디지털 장부는 현실과 다른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다. 따라서 목재 공급망에서는 기록의 변조 방지보다 현실의 목재와 디지털 신분을 일치시키는 일이 먼저이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물리적·생물학적 식별 기술과 결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RFID 태그, 자동 잉크젯 표시, 사진을 이용한 원목 표면 식별, 유전자 분석과 같은 기술이 실제 목재의 정체를 확인하는 닻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이 식별 결과와 거래 사건을 변경하기 어려운 장부에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FSC·PEFC 산림인증과 블록체인의 결합

블록체인은 기존 산림인증제도를 없애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FSC와 PEFC 같은 인증제도의 자료 수집과 감사를 보완하는 수단에 가깝다. 인증기관은 블록체인에 기록된 벌채와 운송 사건을 확인하고, 현장 조사와 물리적 식별 결과를 결합해 공급망의 연속성을 검증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기업 정보와 거래 내용을 공개형 블록체인에 올리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 목재 가격과 거래량, 공급처와 계약조건은 중요한 영업정보이기 때문이다. 연구는 권한을 부여받은 참여자만 자료를 열람하거나 검증할 수 있는 허가형 네트워크와 하이브리드 구조가 산림 산업에 더 적합하다고 봤다.

민감한 원자료는 기존 서버에 보관하고, 자료가 특정 시점에 존재했다는 증거와 핵심 거래 사건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러한 오프체인 저장 방식은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도 기록의 무결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재해 목재를 신속하게 배분하는 스마트계약 모델

산림은 공장에서 계획대로 생산되는 자원이 아니다. 폭풍과 산불, 가뭄, 해충 피해가 발생하면 예정에 없던 대량의 목재가 갑자기 시장에 나온다. 연구진은 이러한 생물학적 불확실성을 처리하기 위해 가스 산업의 용량 배분 방식을 목재 물류에 적용하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산림 경영계획에 따라 예정된 연간 벌채량을 고정 물량으로, 폭풍이나 병해충 때문에 발생한 재해 목재를 변동 물량으로 구분한다. 수확 장비가 원목의 부피와 품질, GPS 위치를 디지털 파일로 생성하면 해당 정보가 스마트계약에 전달된다.

스마트계약은 제재소의 미충족 주문과 새로 발생한 목재 물량을 자동으로 비교한다. 품질과 규격이 일치하면 적절한 계약에 물량을 배정하고 제재소에 통보한다. 수작업 승인과 이메일 교환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므로 운송계획을 빠르게 세울 수 있다. 다만 이 모델은 연구에서 실제로 검증된 결과가 아니라 향후 실증시험이 필요한 개념적 제안이다.


중소 산림 소유자와 기업이 마주할 도입 장벽

블록체인 기반 목재 추적 시스템은 초기 구축비와 장비 구입비, 교육비를 필요로 한다. 넓은 산림을 보유한 기업에는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지만 영세 산주와 소규모 벌목업자에게는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술이 규제 대응 비용만 늘리고 목재 가격이나 업무 효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데이터 주권이다. 누가 자료를 소유하고 누가 수정과 열람 권한을 가지며, 잘못된 정보를 누가 바로잡을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 블록체인이 탈중앙화를 내세우더라도 대기업이나 특정 플랫폼 운영자가 기술 표준과 접근권을 장악하면 새로운 권력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연구진은 산림조합이나 협동조합이 소규모 산주의 자료를 모아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공기관은 개방형 데이터 표준과 공동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영세기업에는 재정 지원과 간소화된 감사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는 블록체인의 구조를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휴대전화나 기존 작업장비를 통해 쉽게 정보를 입력할 수 있어야 한다.


산림 생태계 서비스로 확장되는 블록체인 활용

블록체인의 활용 범위는 목재의 원산지 확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림이 흡수한 탄소와 보전한 생물다양성, 제공한 깨끗한 물과 공기 같은 생태계 서비스도 검증 가능한 데이터로 기록할 수 있다.

설문에서 산림 생태계 서비스 플랫폼의 우선순위를 조사한 결과 물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깨끗한 공기와 이산화탄소 흡수원이 뒤를 이었다. 서식지 보전과 침식 방지도 중요한 항목으로 나타났다. 이는 산림의 경제적 가치가 벌채한 목재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검증 가능한 산림관리 자료가 축적되면 산주는 탄소시장이나 생물다양성 보상제도에 참여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환경적 성과의 중복 계산과 기록 변경을 막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참여자의 61%가 탄소 지표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한 반면 39%는 운영상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았다. 에너지 사용과 행정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목재 블록체인 도입을 위한 핵심 조건

첫째, 산림 현장에서 정확한 디지털 원자료를 생산해야 한다. 둘째, 기업과 기관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표준과 프로그램 연결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원목과 디지털 기록을 연결하는 물리적 또는 생물학적 식별 기술이 필요하다. 넷째, 영업비밀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권한 설계를 갖춰야 한다. 다섯째, FSC·PEFC 인증과 EUDR 실사 절차를 별도의 시스템으로 만들지 말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이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목재 공급망의 신뢰를 높이는 조정 장치가 된다. 반대로 종이 기록과 단절된 프로그램, 불확실한 원산지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복잡성과 비용만 증가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블록체인을 먼저 설치하는 일이 아니라 숲에서 시장까지 이어지는 정보의 흐름을 먼저 정비하는 일이다.


EUDR 시대의 목재 추적성과 블록체인의 현실적 가치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블록체인이 독립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하이브리드 추적 시스템의 한 구성요소라는 점이다. 현실의 나무를 확인하는 식별 기술, 정확한 현장 자료, 인증기관의 검증, 법적 책임과 데이터 표준이 함께 작동해야 블록체인의 기록도 신뢰를 얻는다.

블록체인은 거짓말을 알아내는 기술이 아니다. 다만 여러 참여자가 확인한 사건을 사후에 바꾸기 어렵게 기록하는 데 탁월하다. 숲에서 처음 만들어진 정보가 정확하다면 그 정보가 항구와 제재소, 공장과 시장을 지나는 동안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UDR이 요구하는 것은 화려한 신기술이 아니라 목재의 출처를 입증할 수 있는 연속적이고 검증 가능한 증거이다. 블록체인은 그 증거를 연결하는 단단한 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이 아무리 튼튼해도 첫 매듭이 잘못 묶이면 전체 사슬은 믿을 수 없다. 목재 공급망의 미래는 블록체인의 이름보다 정확한 현장 데이터와 공정한 운영 규칙을 얼마나 충실하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연구의 범위와 해석에 필요한 한계

이 연구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를 포함한 중부 유럽의 산림·목재 산업을 중심으로 수행됐다. 따라서 행정체계와 디지털 기반이 다른 열대지역이나 개발도상국의 목재 공급망에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온라인 설문 응답자는 디지털 기술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로 치우쳤을 가능성도 있다.

연구진이 559명에게 설문 참여를 요청했지만 완전 응답은 69건으로, 응답률은 약 12.3%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전문가 인터뷰 41건과 전문가 워크숍을 함께 분석했다. 앞으로는 다양한 국가와 산림환경에서 대규모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비용 절감과 불법 목재 차단 효과를 실제 수치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출처

Stopfer, L., Engler, B., & Purfürst, T. (2026). Blockchain as a Tool for Sustainability and Legality in the Timber Trade—A Study in the Context of the EUDR. Blockchains, 4, 13. https://doi.org/10.3390/blockchains403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