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과학자 950명이 21시간 동안 DNA를 뒤졌다, 바이러스에서 발견한 ‘CRISPR 같은 유전자’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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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과학자를 돕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방대한 생물학 데이터를 뒤지고, 인간 연구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상한 패턴을 찾아내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2026년 9월 앤트로픽(Anthropic)이 공개한 연구는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약 950개의 클로드(Claude) AI 에이전트가 21시간 동안 방대한 유전정보를 조사한 끝에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독특한 유전 시스템을 찾아냈다.
앤트로픽은 이를 배열 연관 역전사효소(Array-Associated Reverse Transcriptases), 줄여서 ART라고 이름 붙였다.
950개의 AI 에이전트는 무엇을 찾고 있었나
이번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AI에게 처음부터 “CRISPR와 비슷한 시스템을 찾아라”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구진이 제시한 큰 목표는 방대한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흥미로운 역전사효소(reverse transcriptase·RT)를 찾는 것이었다. 역전사효소는 RNA 정보를 DNA로 옮기는 효소이다.
그 뒤 작업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연구진의 프리프린트에 따르면 AI 시스템은 약 19억 개의 단백질 클러스터가 포함된 데이터 공간을 조사했다. 약 950개의 에이전트가 21시간가량 작업했으며 처리량은 약 2억1천만 토큰에 달했다. 조사 과정에서 20만 개가 넘는 역전사효소가 검토 대상에 올랐다. 사람이 하나씩 들여다보았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종류의 작업을 수많은 AI 에이전트가 나눠서 처리한 셈이다.
AI가 DNA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상한 반복무늬
결정적인 순간은 한 AI 에이전트가 특이한 역전사효소 주변의 DNA를 살펴보면서 찾아왔다. 그곳에는 짧은 DNA 서열이 일정한 형태로 반복되는 기묘한 배열이 있었다. 원래 주어진 임무의 핵심은 이런 반복배열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AI가 주변 서열까지 조사하다가 예상 밖의 규칙성을 포착한 것이다. 이후 유사한 계통을 조사하면서 이 구조가 우연한 한 사례가 아니라 별도의 시스템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대목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다. 과학에서 중요한 발견은 반드시 처음부터 정답을 겨냥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가 다른 것을 찾다가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그 역할의 일부를 AI가 수행했다. 정해진 항목만 기계적으로 검색한 것이 아니라 주변 정보를 따라가다가 예상하지 않았던 패턴을 찾아낸 것이다.
ART는 왜 CRISPR와 닮았다고 하는가
ART가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 때문이다. 연구진이 보고한 ART 시스템에는 역전사효소, 그 옆의 별도 파트너 유전자, 그리고 반복되는 DNA 배열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반복배열은 3~21개의 반복 단위를 포함하며 그 사이에는 비교적 긴 고유 서열이 들어가 있다. 이런 모습이 유명한 CRISPR 배열을 연상시킨다.
CRISPR 역시 처음부터 인간의 유전자를 고치는 의료기술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자연계에서 미생물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그 원리가 밝혀졌고, 이후 과학자들이 특정 DNA를 정밀하게 겨냥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자연에서 독특한 반복배열과 효소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생명공학 연구자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단서가 된다.
ART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인가
여기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현재 단계에서 ART를 ‘새로운 CRISPR 유전자 가위’라고 부르면 지나친 해석이다. 연구진도 ART의 정확한 생물학적 기능을 아직 모른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역전사효소가 실제로 어떤 반응을 수행하는지, 반복배열에서 만들어지는 RNA가 이 효소의 기질인지, 파트너 단백질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하는 DNA 위치를 찾아가 자르거나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CRISPR 같은 유전자’라는 표현은 기능이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라 배열과 구성에서 흥미로운 유사성이 발견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하다. 이번 결과는 2026년 9월 23일 공개된 프리프린트 단계이며 아직 동료평가를 거친 최종 논문도 아니다.
그래도 실험실에서 중요한 단서는 확인됐다
그렇다고 단순히 컴퓨터 화면에서 DNA 글자 몇 개가 비슷하게 보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구진은 후속 분석에서 ART 계열을 주로 거대한 박테리오파지(jumbo phage)와 바이러스 유래 서열에서 확인했다. 또한 일부 ART 배열이 실제로 RNA로 전사된다는 증거를 얻었다.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을 감염시키는 파지의 기존 데이터에서는 배열에서 유래한 RNA가 상당히 풍부하게 나타났고, 실험에서도 반복배열로부터 서로 구별되는 짧은 RNA들이 생성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후보를 발견하고 인간이 실험으로 따라갔다는 점이다. 앤트로픽의 연구에서는 실제 실험실 작업을 인간 과학자들이 담당했다. AI가 가설과 후보를 빠르게 만들어내고 인간이 생물학적 현실에서 이를 검증하는 형태이다. 적어도 현재의 생명과학에서는 AI가 과학자를 완전히 대체한다기보다 과학자의 탐색 범위를 크게 넓히는 방향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AI 과학자의 진짜 능력은 ‘정답’보다 ‘이상한 것 찾기’에 있다
이번 연구가 특별한 이유는 ART 자체만이 아니다. 과학자가 AI를 사용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대체로 인간이 정한 조건에 따라 데이터를 검색하는 도구였다. A라는 서열을 찾으라고 하면 A와 비슷한 것을 찾고, 특정 단백질을 분류하라고 하면 그것을 분류했다.
AI 에이전트는 조금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러 에이전트가 동시에 다른 후보를 조사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중간 결과를 비교하며 다음 조사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AI가 처음부터 요구받지 않았던 DNA 반복패턴까지 추적했다. 이런 능력이 발전한다면 인간이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할 규모의 유전체 데이터에서 ‘이상한 것’을 골라내는 새로운 과학적 탐색 방식이 등장할 수 있다.
950명의 AI 과학자라는 표현에는 함정도 있다
다만 ‘AI 과학자 950명’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950명의 독립적인 인간 박사급 연구자가 모여 연구했다는 뜻이 아니라 약 950개의 AI 에이전트 세션이 병렬적으로 작업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또한 흥미로운 한계도 드러났다. 연구진이 비슷한 탐색을 반복했을 때 매번 같은 방식으로 ART의 반복배열을 다시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즉 AI의 탐색에는 비결정성과 재현성 문제가 남아 있다.
이 점은 오히려 이번 연구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AI가 인간 과학자처럼 예상하지 못한 단서를 따라갈 수 있다면, 인간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AI 과학 시스템의 성능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읽느냐뿐 아니라 발견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재현하고 근거를 추적할 수 있느냐에 의해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러스 속에는 아직 얼마나 많은 생명공학 도구가 숨어 있을까
자연은 인간이 만든 적이 없는 거대한 분자기계 도서관과 같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수십억 년 동안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DNA를 자르고, 복사하고, 붙이고, 변형하는 수많은 분자 장치를 진화시켜 왔다. 인간이 그중 극히 일부를 발견해 제한효소와 CRISPR 같은 혁신적인 기술로 발전시켰을 뿐이다.
ART가 제2의 CRISPR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특별한 생명공학적 용도가 없는 바이러스의 독특한 장치로 끝날 수도 있다. 반대로 오랜 실험 끝에 지금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DNA 조작 기술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단정할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보여준 한 가지 변화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데이터가 부족해서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발견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19억 개의 단백질 클러스터를 사람이 직접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AI는 바로 이 인간의 시야 밖에 있는 거대한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과학자의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직접 찾는 것이 아니라 AI가 찾아온 수천 개의 단서 가운데 무엇이 진짜 자연의 비밀인지 판별하는 능력이 될지도 모른다.
출처
Anthropic, “Claude discovers a novel enzyme system with CRISPR-like repeats,” 23 September 2026.
Yoon, P. H. et al., “Autonomous AI Agents Discover Reverse Transcriptases with Tandem Repeat Arrays,” preprint, 23 September 2026.
Nature, “Anthropic’s AI biolab finds ‘CRISPR-like’ DNA in viruses. What’s next?”, September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