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창의성을 높여주면서 동시에 창의성을 죽일 수도 있는 역설

따뜻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인간과 차가운 디지털 공간에서 반복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로봇이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
생성형 AI는 인간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모두가 비슷한 AI의 도움을 받을수록 창작물이 서로 닮아갈 수도 있다. 개인의 창의성 향상과 집단적 다양성 감소라는 AI 시대의 역설을 표현한 이미지이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예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책장을 뒤적이고,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뜻밖의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때로는 한 문장을 고치느라 30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이 문장을 조금 더 인상적으로 바꿔줘”라고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여러 문장이 나온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면 제목을 20개 만들 수도 있고, 소설의 등장인물이 막히면 성격과 직업, 과거까지 만들어준다.

분명 창작은 쉬워졌다. 그런데 이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같은 인공지능에게 아이디어를 묻고, 비슷한 프롬프트를 입력한다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글과 그림과 광고도 조금씩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최근 연구들이 보여주는 생성형 AI의 창의성에는 바로 이런 역설이 숨어 있다. AI는 한 사람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AI를 사용하면 사회 전체의 창의적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평범한 사람의 아이디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AI

AI가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은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엑서터대학교(University of Exeter) 연구진이 2024년 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연구는 생성형 AI의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쓴 짧은 이야기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작품보다 더 창의적이고, 더 잘 쓰였으며, 읽는 재미도 높게 평가됐다고 보고했다. 특히 원래 창의성 평가가 낮았던 참가자에게서 효과가 더 컸다.

이 결과는 AI의 가장 강력한 장점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생각의 사각지대가 있다. 한 가지 생각에 빠지면 다른 방향을 떠올리기 어려워진다. 그때 AI에게 다른 관점을 요구하면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출발점을 몇 초 만에 얻을 수 있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창작한다기보다 머릿속에 잠겨 있던 여러 개의 문을 한꺼번에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AI는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AI 자체의 아이디어 생성 능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2024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GPT-4와 인간 참가자 151명을 대상으로 사물의 새로운 용도를 생각해내는 등의 발산적 사고 과제를 비교했다. 이 실험에서 GPT-4는 여러 평가에서 인간 참가자보다 더 독창적이고 정교한 답을 만들어냈다. 다만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실제 세계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복잡한 창조 행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025년 연구에서도 챗GPT-4o(ChatGPT-4o), 딥시크-V3(DeepSeek-V3), 제미나이 2.0(Gemini 2.0)은 연구에 참여한 인간 집단보다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 과제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다. 동시에 연구진은 기존의 창의성 측정 방법 자체가 AI 시대에도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디어를 많이 또는 빨리 만들어내는 능력과 인간이 평생 경험하고 고민한 끝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같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더 창의성을 추구하면서도 결과물은 서로 닮아간다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등장한다. 앞서 소개한 Science Advances 연구에서 AI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작품은 개별적으로는 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자 AI를 이용한 이야기들이 인간 혼자 쓴 이야기보다 서로 더 비슷해졌다. 연구진은 이를 개인의 창의성 향상과 집단적 다양성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가령 100명의 작가에게 아무런 도움 없이 ‘외로운 노인에 관한 단편소설’을 쓰라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시골의 폐가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매일 같은 자리에 앉는 노인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우주정거장에 혼자 남은 노인을 쓸지도 모른다. 인간은 각자의 기억과 상처, 직업, 고향, 독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런데 100명 모두가 AI에게 먼저 “외로운 노인에 관한 독창적인 소설 아이디어를 알려줘”라고 묻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AI가 아무리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그것들은 결국 모델이 학습한 거대한 문화적 패턴에서 생성된다. 작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AI가 먼저 제시한 방향에 닻을 내릴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앵커링’이 창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AI의 첫 번째 답변이 생각의 출발점을 점령한다

창작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AI가 틀린 답을 할 때가 아니라 너무 그럴듯한 답을 할 때인지도 모른다. 형편없는 아이디어라면 사람은 금방 버린다. 하지만 적당히 새롭고 잘 정리된 아이디어를 받으면 굳이 힘들게 다른 길을 찾아갈 이유가 줄어든다.

2025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복잡한 과제에서 일반적이고 제약이 없는 대규모 언어모델과 협업할 경우 ‘창의적 고착(creative fixation)’이 나타날 가능성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AI가 영감을 제공하는 효과와 동시에 특정 방향으로 인간의 사고를 붙잡아두는 효과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지점이 AI 시대의 창작자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빈 종이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은 괴롭다. 그러나 어쩌면 그 시간이 창의성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실패한 문장을 쓰고, 지웠다가 다시 쓰는 과정에서 남들과 다른 길이 생긴다. AI는 그 불편한 시간을 너무 쉽게 없애준다. 문제는 그와 함께 우연한 발견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AI가 인간보다 창의적인가라는 질문의 함정

AI와 인간 가운데 누가 더 창의적인지를 단순하게 결정하기도 어렵다. 2025년 말 발표된 대규모 연구에서는 9,198명의 인간과 21만 건이 넘는 LLM 응답을 비교했다. 이 연구에서는 평균적으로 인간의 창의성이 LLM보다 약간 높았으며, 특히 창의성 분포의 최상위 영역에서는 인간의 강점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LLM이 평균적인 인간보다 일부 발산적 사고 과제에서 뛰어나거나 인간의 창작 능력에 근접했지만, 창의성이 높은 인간 집단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연구 결과는 오히려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창의성’은 하나의 숫자로 측정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새로운 단어 조합을 만드는 능력, 많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시하는 능력, 전혀 다른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자신의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AI가 일부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한다고 해서 창작이라는 인간 활동 전체를 능가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AI를 정답 기계가 아니라 반대편 사람으로 사용하는 방법

그렇다면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해결책일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러 실험은 AI가 실제로 사람의 창의적 성과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된 다섯 차례의 실험에서도 챗GPT(ChatGPT)를 활용한 참가자들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거나 일반 웹 검색을 사용한 참가자보다 여러 창의적 문제에서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언제 쓰느냐이다. 나는 창작의 첫 단계만큼은 인간이 먼저 생각하는 방식이 더 흥미롭다고 본다. 제목을 다섯 개쯤 직접 적어보고, 줄거리의 방향을 먼저 정하고, 자신의 경험에서 소재를 끌어낸 다음 AI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더 좋은 아이디어를 줘”라고 묻는 대신 “내가 놓친 관점 세 가지를 찾아라”,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와 연결해보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AI는 작가 대신 첫 문장을 쓰는 대필자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흔드는 토론 상대가 된다.


한국의 교육과 콘텐츠 시장에서 더 중요한 문제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학교 과제와 자기소개서에서 블로그, 유튜브 대본, 광고 문구, 회사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빠르게 넓어졌다. 짧은 시간 안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AI의 장점이 매우 크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던 사람도 기본적인 구조와 표현을 갖춘 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비슷한 AI에게 수행평가 아이디어를 묻고, 모든 블로거가 비슷한 방식으로 제목을 만들며, 기업의 기획자들이 같은 모델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시작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글 하나하나는 예전보다 매끄러워졌는데 인터넷 전체를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제목과 문장이 넘쳐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평균 품질은 올라가지만 개성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교육과 취업, 콘텐츠 시장에서 일정한 성공 공식을 빠르게 공유하고 따라가는 문화에서는 이러한 ‘AI식 평균화’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중요한 능력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AI가 제시한 첫 번째 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일 가능성이 크다.


창의성의 미래는 인간과 AI 사이의 거리에 달려 있다

생성형 AI는 창의성의 적도 아니고 창의성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도구도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아이디어 증폭기에 가깝다. 평범한 아이디어를 더 흥미롭게 만들고 막힌 생각을 움직이게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증폭기를 사용하면 결과물의 색깔이 비슷해질 위험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인간 자신의 경험이 더욱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냄새, 오래전 지하철에서 우연히 본 사람, 실패했던 사업, 사랑했던 사람과의 대화,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에서 얻은 감각은 AI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영역이다. AI가 수백 개의 문장을 만들어줄 수 있어도 어떤 문장을 선택할지는 결국 인간에게 남는다.

AI가 창의성을 죽이는 순간은 AI가 너무 창의적이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이 생각하기 전에 AI에게 먼저 생각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일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이 먼저 생각하고 AI에게 자신의 생각을 깨뜨려달라고 요구한다면 AI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창작 도구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창의성은 기계가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느냐보다 인간이 그 아이디어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출처

Anil R. Doshi & Oliver P. Hauser, Generative AI enhances individual creativity but reduces the collective diversity of novel content, Science Advances, 2024.

Kent F. Hubert, Kim N. Awa & Darya L. Zabelina, The current state of artificial intelligence generative language models is more creative than humans on divergent thinking tasks, Scientific Reports, 2024.

Byung Cheol Lee & Jaeyeon Chung, An empirical investigation of the impact of ChatGPT on creativity, Nature Human Behaviour, 2024.

Vikram Arora et al.,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models outperform students on divergent and convergent thinking assessments, Scientific Reports, 2025.

Dawei Wang et al., A large-scale comparison of divergent creativity in humans and large language models, Nature Human Behaviour, 2025/2026.